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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해도 일상으로 못 돌아와”···‘집회 통제 후유증’ 겪는 사람들

지난달 26일 새벽 최별하씨(22)는 서울 서초구 지하철 남태령역에서 종로구 경복궁역으로 다급히 이동했다. X(옛 트위터)에 “경찰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트랙터를 견인한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아침 7시쯤 경복궁역 3번 출구에 도착하자 견인되는 트랙터가 보였다. 최씨는 트랙터로 다가가다 경찰에 막혔다. 경찰은 최씨를 밀쳤고 넘어진 최씨의 등 위를 “성인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덮쳤다. 주위 시민들이 “경찰에 사람이 깔렸다”고 외쳤지만 최씨는 그대로 10~15분간 깔려 있었다. 최씨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덮쳐왔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파면되면서 탄핵 촉구 시위는 마무리됐지만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다친 시민들에게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이 남았다. 피해자들은 “윤 대통령이 파면됐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인근 카페에서 최별하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인근 카페에서 최별하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최씨는 “지난달 26일 이후 통증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다”며 “아직도 오래 걷거나 뛰지 못한다”고 말했다. ‘폐 타박상’ 진단을 받은 최씨는 나흘간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교통사고 수준의 내상”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퇴원 후에도 주 2회 동네 병원에서 진통 수액을 맞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 시위에 참여한 최별하씨가 경찰과 인파 사이에 끼어 있다. 최씨 제공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 시위에 참여한 최별하씨가 경찰과 인파 사이에 끼어 있다. 최씨 제공

최씨와 같은 날 경찰과 대치하다가 다쳐 수술까지 해야 했던 시민도 있다. 박태훈 진보당 대학생위원회 준비위원장(33)은 트랙터로 달려가던 중 경찰이 오른팔을 잡아당겨 왼발이 꺾였다. 왼쪽 발목 인대가 찢어지고 복사뼈가 부러졌다. 박씨는 병원에서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박씨는 아직 재활치료 등을 받고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역시 경찰이 집회 참가자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인파에 깔려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김 소장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던 지난 4일 수술을 받았다. 그는 당분간 목발·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

배준경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조직국장(42)도 같은 날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허리 인대가 늘어나 응급실로 실려 갔다. 배씨가 찍힌 영상을 보면 경찰은 “체포해”라며 배씨의 뒤에서 목을 조르고 잡아당겼다. 배씨는 “경찰이 제 옆에서 욕설도 했다”며 “이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제압해야 할 상황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지난 3월2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배준경씨를 제압하고 있다. 마트노조 제공

경찰이 지난 3월2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배준경씨를 제압하고 있다. 마트노조 제공

‘집회 통제 후유증’은 시민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운전을 할 수 없어 출장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해외 가수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을 1년 전에 예매했는데 결국 못 가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탄핵이 되면 야구 경기를 보러 가려고 시즌 경기표를 끊어놨는데 취소했다”며 “일상의 많은 부분이 망가졌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말했다. 배 국장은 “윤석열은 관저에서 나올 때 퍼레이드까지 하게 보장해준 경찰이 시민들은 이렇게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공권력이 누구 편인가’하는 실망감을 느꼈다”며 “경찰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이번 사건으로 생긴 트라우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씨 역시 “경찰들이 옆으로 지나가면 심장이 빠르게 뛴다”며 “경찰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경찰을 계속 무서워할 것 같다. 그러면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2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박태훈 진보당 대학생위원회 준비위원장이 왼쪽 발목을 응급처치한 후 깃대를 목발 삼아 서 있다. 박 위원장 제공

지난 3월2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박태훈 진보당 대학생위원회 준비위원장이 왼쪽 발목을 응급처치한 후 깃대를 목발 삼아 서 있다. 박 위원장 제공

임정주 경찰청 경비국장은 지난달 26일 트랙터 시위 당시 있었던 과잉 진압에 대해 지난 10일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 정 의원이 집회에서 다친 시민들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도 요청했지만 17일까지 시민을 향한 경찰의 사과는 없다. 정 의원은 당시 트랙터 견인을 막다가 경찰에 폭행을 당해 어깨와 등, 허리를 다쳤다.

최새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변호사는 “20건 이상의 피해사례를 접수받았고, 당일 현장에서 피해 사례가 접수된 건은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독직폭행죄 등을 적용해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독직폭행이란 경찰 등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행한 폭행 또는 가혹행위를 말한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은 시민을 규제할 대상으로만 생각하지만 집회·시위에 관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집회·시위가 평화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농민들이 왜 트랙터를 이용해야 했는지, 시민들이 왜 호응했는지 이해해야 할 경찰이 시민을 다치게 한 것은 본연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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