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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집단 이기주의·원칙 훼손···의대 모집인원 회귀 ‘예견된 실패’

17일 광주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17일 광주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정부가 17일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발표 1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린 것을 두고 ‘예견된 정책 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대화와 타협을 외면한 채 정책을 강행하고, 의료계 역시 한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한 결과다. 1년간 의료공백의 피해는 오롯이 환자와 국민 몫이었다. 정부가 원칙을 연이어 허물며 의대생들에게 예외를 허용하면서 결국 의대 증원 철회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대 증원은 2023년 하반기부터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 주도로 추진됐다. 복지부는 지난해 2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기로 발표했다. 당시 정부 내부에서도 “증원을 할 순 있지만 어떻게 2000명으로 정해졌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나왔다.

증원 결정 이후에는 정부와 의료계는 ‘강 대 강’으로 붙었다. 정부는 증원 2000명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했다며 의료계에 “과학적 근거를 갖고 오면 논의하겠다”고 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증원 결정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맞서며 서로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펴는 상황이 지난해 내내 반복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포고령에는 ‘현장에 복귀하지 않는 의료인을 처단한다’는 내용을 담을 만큼, 의료계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은 “대규모 증원으로 의대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전공의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미래 소득을 보장해달라’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정부 내에서 끝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정책 실패의 방증이다. 교육부는 올 초부터 의대생 복귀를 위한 마지막 정책 수단으로 증원 철회를 검토했지만 대통령실이나 복지부의 반발이 거셌다. 이날 교육부 주도로 이뤄진 증원 철회 발표에도 복지부는 불만을 드러냈다. 복지부는 “의대 학사일정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여건을 감안한 조치라고 생각된다”면서도 “지난달 초 발표한 2026년 의대 모집인원 결정 원칙을 바꾸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교육부가 지난해부터 원칙을 하나씩 허물며 의대생들에게 예외를 허용한 점도 패착으로 꼽힌다. 교육부는 지난달 7일 의대생의 수업 ‘전원 복귀’를 전제로 증원 철회를 내걸었지만 이날 발표는 수업 복귀율이 25.9%에 그친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이주호 교육부 장관, 양오봉 전북대 총장 등은 “(의료계에) 물러서는 것이 아니다”라거나 “유급에 대한 학칙은 엄정히 지킨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불통·집단 이기주의·원칙 훼손···의대 모집인원 회귀 ‘예견된 실패’

지난해에도 교육부는 동맹휴학 불허 방침을 유지하다 지난해 10월 “동맹휴학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의대생들의 휴학 승인을 하게 했다. 동영상 강의 수강 등 각종 학사유연화 조치도 허용했다.

교육부는 원칙을 어길 때마다 입시일정, 의대 교육과 의료인력수급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지만 의대생들에게 “버티면 얻어낸다”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수도권의 한 병원장은 “처음부터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원칙을 적용했어야 한다”며 “정부가 의료계에 다 양보한 상황에서 이제는 증원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고 했다.

2027학년도 의대 정원부터는 전문가를 포함한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서 논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의·정 갈등이 재연될 불씨도 있다. 한 수도권 병원장은 “모집인원 회귀로 추계위는 동력을 잃게 됐다”면서 “의료계는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다시 집단행동에 나설텐데, 지금부터라도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를 향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증원 철회에도 의대생-전공의 강경파를 중심으로 ‘휴학하고 버텼던 것은 학생들 존재감 드러내기 위함’ ‘우리가 유급되면 의료 인력 배출에 공백이 생기고 정부는 항복할 것’ 등의 내용을 의대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올해도 의대생들이 유급되면 내년에는 24·25·26학번 1만여명이 한꺼번에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한다. 대학 내에선 “증원에 따른 의대 교육 여건을 개선해달라”고 주장했던 의대생들이 수업 여건 악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불만이 크다.

이날 정부의 증원 철회로 수험생 혼란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대학 입시는 보통 전년도 학과별 입학 성적, 지원 추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이 다시 바뀌면서 수험생들은 판단 기준이 사라졌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입시 환경이 유사하다면 전년도 결과와 비슷한 경향이 나타날 것을 가정해 입시를 준비할 수 있다”며 “올해 적지 않은 수험생들은 구체적 근거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지원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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