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미 워싱턴에서 회담한 후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 트루스소셜 트럼프 대통령 계정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품목 관세를 둘러싼 미·일 협상이 시작됐다. 대미 흑자 규모와 산업 구조, 지정학적 여건이 유사한 일본과 트럼프 행정부 간 대화는 다음주 기획재정·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방미가 예정된 한국에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전문가들은 미·일 간 협상에서 ‘타결까지의 속도’, 미국의 구체적 요구 내용, ‘품목관세’의 인하·면제 여부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6일(현지시간) 미·일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50분간 ‘개입’한 것을 미뤄볼 때, 인삿말 수준을 넘어선 구체적 요구나 압박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일미군 주둔 비용의 부담 확대, 일본 내 미국산 자동차 판매 확대,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해소 등 3가지 사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일본과 미국은 관세, 무역, 안보를 엮은 패키지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1주일 먼저 협상을 개시한 일본의 사례에서 참고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먼저 ‘속도’다. 일본이 미국과 조기타결 목표에 합의하는 등 미국이 요구하는 속도에 발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결을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는 “일본의 이번 방미 목표는 ‘미국의 의도가 뭔지 철저히 파악하고 오겠다’인 반면, (다음주 방미가 예정된) 권한대행 체제의 정부는 벌써 무엇을 줄 수 있느냐를 얘기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빠른 타결을 재촉할 경우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우리는 되도록 (협상을) 조기에 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교섭의 향후 진전은 아직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목표는 ‘빠른 타결’이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는 기조에 가깝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시 일본이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연구위원은 “4월30일에 미국의 1분기 GDP(국내총생산) 지표가 발표되는데 마이너스 3% 성장 전망까지 나온다”면서 “여론이 악화할 경우 트럼프가 후퇴할 모멘텀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본은 이런 상황까지 지켜보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일 ‘패키지’ 협상을 통해 향후 미국이 한국에 제시할 요구사항도 가늠해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과 미국산 자동차 판매 확대, 대일 무역적자 해소 등 크게 3가지를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요구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향후 협상이 진행되면서 세밀한 요구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제2차관을 지낸 이태호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무역적자와 관련해) 비관세 장벽에 대한 미국 업계의 불만은 많이 알려져 있으나, 미국 정부의 요구가 무엇인지는 공개된 게 없다”며 “일본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구체적인 관심 사항이 뭔지가 일부나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그러면서 “한덕수 권한대행과의 통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도 (한국과의 협상) 패키지에 포함될 수 있을 것처럼 언급한 만큼, 미·일 간 방위비 논의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품목관세’까지도 협상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도 쟁점이다. 일본 정부는 ‘자동차 품목관세 면제’를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 상호관세보다는 자동차에 부과된 품목관세의 타격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한국도 처지가 비슷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액 중 상호관세 적용 품목은 566억달러 규모인 반면, 품목관세 적용 품목은 677억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위주로 협상을 하려 한다는 점이다. 상호관세 행정명령엔 각국과 협의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고 명시된 반면, 품목관세에 대해선 예외가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일본과 한국 모두 상호관세보다는 품목관세에 주요 수출 품목들이 걸려 있다”면서 “품목관세도 낮출 여지가 있는 것인지, 얼마나 낮춰줄 수 있는 것인지를 (미·일 간 협상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