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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해서 허름한 조선 말고

숙수(熟手) 박이돌(朴二乭)은 토란을 가지고 별미를 만들었다. 조선 숙종도 이를 달게 먹었다. 숙수란 전문 요리사이다. 주방장직을 맡을 수 있는 최고 실력의 요리사가 곧 숙수이다. 박이돌은 자신이 만든 음식의 자취도, 요리사로서 제 이름도 남겼다. 더덕 또한 반찬을 넘는 별미가 될 만하다. 관청에 딸린 노비 강천익(姜天益)은 더덕으로 일종의 튀김과자를 만들었다.

사복시의 거덜 지언남은 붕어를 황토에 싸 약한 불로 굽는 방식의 붕어구이를 잘했다. 사복시는 조선 임금의 가마 그리고 말과 마구와 목장을 관리하는 부서다. 거덜은 높은 사람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다니는 사복시 소속 종이다. 말 탄 높은 사람의 몸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높은 분 모시고 비싼 말 이끄는 종놈 또한 공연히 우쭐거리게 마련이다. 우쭐에 흔들, 거만한 태도를 가리키는 ‘거들먹이다’가 ‘거덜’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쭐대기는 허튼짓과 한 쌍이다. 허랑방탕 살던 자가 재산을 결딴내면 ‘거덜 냈다’라고 한다. 이 역시 ‘거덜’에서 유래했으리라. 사복시 거덜의 정원은 쉰일곱 명이다. 아무튼 쉰일곱 거덜 가운데 지언남은 음식 솜씨가 좋아 이렇게 제 이름을 남겼다.

종6품 벼슬아치의 노비인 차순(次順)은 붕어찜을 잘했다. 만두전골에서도 솜씨를 뽐냈다. 차순은 붕어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소를 채웠다. 그러고는 참기름에 지지고 닭 육수에 조리는 과정을 더 거쳤다. 왕의 끼니와 궁궐의 먹을거리를 맡은 관청인 사옹원 소속 권타석은 닭고기만두가 장기였다. 솜씨 좋은 사람에게는 내 도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는 소를 치댈 때 구기를 썼다. 구기는 술, 죽, 기름을 풀 때 쓴다. 국자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도구이다. 자루가 상대적으로 짧고, 바닥이 상대적으로 오목하다. 만두는 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는 메밀가루 반죽을 종잇장처럼 밀어 펼 줄 알았다. 피에도 도구를 댔다. 대나무통으로 찍어 피를 땄다. 고른 모양을 원했기 때문이다. 숙수 넉쇠와 이돌이(二乭伊)도 권타석의 만두를 배워보겠다고 모였다. 숙종은 이 닭고기만두를 여러 날 상에 받았다. 위의 이야기들은 숙종의 어의(御醫)를 지낸 이시필(李時弼·1657~1724)의 저술과 그 주변에 남은 바다.

이시필의 시대는 그야말로 약과 음식이 붙어 있던 때였다. 조리와 음식은 어의의 당연한 업무였다. 이시필은 왜관을 통해 들어온 필리핀 해역의 사고야자나무 녹말을 다룰 줄도 알았다. 비록 실패했지만 스펀지케이크 굽기도 시도했다. 병조의 정5품 벼슬아치의 아내가 앉을 새도 없이 주악 지지던 모습이며, 우의정이 먹던 꿩고기보푸라기와 반건조전복 요리도 기어코 기록했다. 덕분에 전근대 요리사에 이름이 남았다. 제 솜씨로 다른 인생을 찾던 사람들의 모습도 남았다.

온 지구를 향해 “한국인의 음식 감각, 한국 출신 요리사의 실력의 연원이 깊다”고 말해야 할 때, 산업상의 ‘한식 스토리텔링’이 필요할 때, 앞서 본 한 대목 한 대목이 다 소중하지 않은가.

뻔해서 허름한 대중매체 속 ‘조선’이 지루한 시절이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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