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고단한 몸을 뉘였다가, 요양원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을 맞다가, 어디론가 이동하던 중 자동차 안에서… 난데없이 들이닥친 뜨거운 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느꼈을 고통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룻밤 사이 강풍을 타고 경북 의성 산골에서 영덕 바닷가까지 100㎞ 가까이 이동한 산불에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화를 당한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31명, 다친 사람도 52명이나 됐다. 대부분 60~80대 고령이었다. 인구과소지역의 재난 방지 역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정부의 안전취약계층을 위한 재난 대피 매뉴얼은 사실상 없거나, 그나마 있는 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진화 헬기는 낡았고, 진화대원도 거의 맨몸이나 다름없이 투입된 고령 노동자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이 다 타버려 오갈 데 없어진 수천명의 이재민이 지금도 절망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 생활이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재난 대응 실패의 책임이 있는 경북도지사는 용산 관저로 달려가 파면된 대통령을 만난 뒤 “충성심”을 인정받았다고 과시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열흘 가까이 이어진 역대 최악의 산불은 건강하지 않은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고령 생존자들이 현장에 간 취재진에게 한결같이 한 말이 있다. “대피할 때 다른 건 몰라도 당뇨·혈압 약은 챙겨 나왔다”거나 “약을 놓고 나와 불 꺼지자마자 집에 와봤다”는 얘기였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챙기려 했던 약들은 어쩌면 이들에게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번 산불 피해 지역은 의료취약지역이다. 필수의료는커녕 의약품 처방 여건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곳 사람들에게 의료를 제공해온 것은 마을 의원과 공중보건의사들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실패로 시골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격감하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 응급의료는 더욱 중요한데, 지역의 현실은 애초 그것이 작동하기 어렵다. 주민들이 약부터 챙긴 것은 본능적 반응이다. 도시에 살고 젊은 편이지만, 몇가지 약을 매일 먹어야 하는 나도 그 심정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국방, 경찰, 소방처럼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업무를 공공재라고 한다. 그 일을 영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 도시 사람들만, 또는 부유한 마을만 따로 지키는 군대와 경찰, 소방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의 사례가 있긴 하다. 최근 로스앤젤레스 산불 때 미국의 부유층은 하루 수천만원을 지불하고 사설 소방대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은 교도소까지 민영화한 나라다. 의료 역시 극단적으로 영리화됐다. 그게 미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을 얼마나 심화했는지 우리는 잘 안다.
한국에서도 의료는 점점 더 공공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지난 1년여 ‘의·정 갈등’ 속에서 더 분명해졌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이 정부가 내년도 입학 정원을 예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고 하자 일단 학교로 복귀했다.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의’와 ‘정’ 간 ‘무승부’라고도 하고 어느 한쪽의 ‘판정패’라고도 한다. 분명한 건 건강 약자들 입장에서 보면 ‘완패’라는 것이다. 이들에겐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붕괴, 재난 대응력 부재로 요약되는 의료 공공성 약화가 남았을 뿐이다. 산불은 그 건강 약자들이 집중된 곳을 무섭게 할퀴었다.
이번 재난에는 인간의 실화, 산림정책, 방재당국의 무능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기후위기가 키운 재난이기도 하다. 올봄 유난히 심했던 이 지역의 강풍과 고온건조한 날씨가 아니었다면, 피해가 이토록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많이 소비하고 많이 버리는 일상을 계속하는 한 산불뿐만 아니라 가뭄, 폭우, 폭염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닥쳐올 것이다.
그 재난이 도시의 콘크리트 안에 사는 나에게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적어도 나는 건강 약자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무리 좋은 의사를 찾아가 내 한 몸을 위한 의료에 집중한다고 해도 온전한 의미의 건강에 도달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것을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몇년 동안 몸으로 겪어낸 바 있다.
사회가 건강하지 않고, 지구가 건강하지 않은데, 그것의 일부인 사람이 건강할 수는 없다.
손제민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