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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 봄 풍경 몇 점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을사 봄 풍경 몇 점

차창이 캔버스처럼 풍경을 시시각각 갈아 끼운다. 희끗희끗 잔설과 파릇한 새싹들. 멀리 뭉클뭉클 굴뚝을 빠져나가는 연기. 브레히트의 짧은 시 ‘연기’가 떠오른다.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연기는 세상에서 나가는 법을 감쪽같이 알려주고, 봄꽃은 세상으로 나오는 방법을 아름답게 가르쳐준다.

겨우내 지면에 착 엎드려 고난의 시절을 이겨낸 달맞이꽃. 훈훈한 기운에 정신을 차리며 어디까지 대궁을 들어 올릴까, 자신이 처한 주위를 살피며 떠들썩하게 일어난다.

도심의 은행나무는 가지가 뭉툭하다. 물푸레나무는 겨울눈이 완강하다.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기운을 맵시 있게 감아올린다. 금슬 이 좋은 부부처럼 대칭한 잎이 밤마다 포개지는 자귀나무는 끝이 여리고 가늘가늘하다. 솔기 없는 바느질 자죽처럼 하늘과 희미하게 섞인다.

공중을 지휘하는 새, 표면장력이 최대치인 빗방울처럼 가지에 앉을 때도 꼬리를 든다. 몸을 동그랗게 오므리려는 의지다. 새는 울 때도 울음, 웃을 때도 울음. 날마다 세상을 뜨는 법을 연구하러 솟구쳐도 결국 제 그림자를 과녁으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 커다란 의미를 정확하게 명중한 무덤 속 누군가처럼.

백 가지 반찬이야 아니지만 백성이 먹는 밥이라고 백반인가. 삼척의 해변식당 입구에 입춘축이 있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자성어들. 호랑이가 살았다는 인왕산 골목에는 호축삼재, 오늘의 식당에는 복덕구족과 입춘대길이다. 입춘은 ‘立春’인데, 노란 한지를 입(入)자처럼 비스듬히 붙여놓았다.

나는 너무 작구나. 전봇대보다 커서 구름에 닿아 천하를 보았더라면! 그래서 나무 아래 세상의 한 모서리를 담당하는 저 이끼와 이 고사리가 고마운 것이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단도(短刀) 같은 풀들 아래로 봄이 바쁘다.

긴 겨울 지나 봄이 도착한다. 삶도 상 아닌가. 개근상 빼고 세상의 모든 상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다. 봄마다 누구나 꽃으로 장식된 상장을 받는다. 부상은 올가을에 열매로 푸짐하게 주시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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