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에는 흰 자두꽃이 한창이다. 산불 현장 답사에 동행한 농민은 저 꽃에서 열매가 제대로 열릴지 걱정했다. 산불 열기로 밭의 멀칭 비닐도 녹았는데 여린 꽃과 나무도 화상을 입었을까 싶어서다. 게다가 지력이 약해져 산사태가 날 수 있어 다가올 여름도 두렵다. 이런 형편이건만 산불로 금사과 사태가 날까 걱정하는 시중의 말들이 박절하다.
31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산불은 역대 최악이었다. 주민들은 불을 끄다 숨진 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이웃을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방재 연구자들은 대형화되는 산불의 추세를 꺾기 어렵다며 대형 인명피해를 우려해 왔다. 산불은 더 커지고 잦아지나 사람을 보호하는 대책은 더디다. 무엇보다 농산어촌에는 고령자가 많다. 귀도 어둡고, 볼 줄 몰라 대피 문자 메시지도 못 보고, 거동도 어려워 위험천만하다. 주기적인 재난 안전 훈련이 꼭 필요하다. 대피소에서 지내는 불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관절 성치 않은 노인들에게 딱딱한 바닥은 고역이다. 그러나 이런 불편을 호소하는 것조차 사치다. 시커멓게 타버린 산만 봐도 가슴이 떨리건만 심리지원단의 조력은 함흥차사다. 지금은 누구라도 붙들고 울고 싶어도 병원에서 수면제 몇알 받아오는 것뿐이다.
호미마저 다 타버려 무엇을 신고해야 할지 정신없는 중에 피해 접수는 4월15일 마감됐다. 말단 공무원들을 붙들고 하소연한들, 큰돈 쥐고 있는 정부는 돈이 없다 하고, 추경은 이제야 논의된다.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내려면 광역지자체장이 나서서 발에 땀이 나도록 중앙부처에 드나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대선에 출마한다며 휴가를 냈다. 이참에 산불 난 자리에 골프장과 리조트를 세우자는 망발은 도지사가 보낸 휴가 선물인가. 차라리 금사과 걱정이 낫다.
전례를 보면 산불 피해 주민들은 어이없는 보상 범위와 금액에 다시 상처를 받는다. 모두 타버린 ‘전파’가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지원금을 합쳐 2000만원에서 최대 3600만원이다. 아무리 집값이 싼 농촌이어도 살 집을 마련하기에는 턱도 없다. 애매하게 골조라도 남은 반파 상태면 1000만원에서 1800만원이니 살림살이 마련할 돈이 될까 말까다. 그래서 차라리 다 타버리는 것이 낫다고도 말한다. 결국 빚을 내 잿더미 위에 빚더미를 얹는다. 보상 과정에서 민관은 갈등하고 주민들끼리 눈치를 보며 사이가 틀어진다. 근린관계까지 태워버리는 것이 산불이다.
피해 주민들은 체육관을 나와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차가운 임시 조립식 주택으로 들어가게 된다. 식구들이 앉을 공간도 없어 명절 제사도 포기한다. 임시주택 거주 기간은 최대 2년. 이후에는 임시주택을 사들이거나 떠나야 하지만 고령의 독거노인들은 여력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누구도 임시주택에서 생을 마무리하리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과수작목은 10년 정도의 수확을 기대하며 가꾼다. 첫 수확엔 3년에서 5년까지 걸리므로 과수원이 타버리면 5년 정도 소득도 없다. 과수농가가 많은 영남 지역은 나무뿌리와 함께 농민의 삶도 뿌리 뽑혔다. 영농 피해 보상금을 받으려면 문서 증빙이 있어야지만 농업의 사정이 문서로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땅을 부치는 임차농들의 사정이 일례다. 이제 막 시작한 귀농·귀촌인들이 땅과 집 마련에 노후를 쏟아부었다면 빈곤 상태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저리여도 산불이 나지 않았으면 내지 않을 빚이다. 목숨 건져 천만다행이라는 말도 상처일 뿐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한 주민의 울먹임 앞에서는 차라리 침묵이 위로다.
이번 산불로 문화재가 전소된 고운사에 들러 주민들의 회복을 기원한다는 짧은 글과 함께 기와 몇장을 보탰다. 기도로 회복이 된다면야 부처님께 삼천배라도 올리겠으나 이는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산불 이후에 오는 것들이 두렵다. 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