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 김창길 기자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손해를 본 미국 사모펀드 ‘메이슨 캐피탈’(메이슨)에게 860억원 가량을 배상하기로 했다. 3200만달러(약 438억원)를 배상하라는 국제중재(ISDS) 판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되자 더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국제 재판에서 배상금이 확정된 첫 사례다. 860억원은 인정된 배상액에 지연이자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법무부는 18일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2025년 3월20일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메이슨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한 압력을 가해 투자에 손해를 봤다며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지난해 4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메이슨 측 주장을 일부 인정해 한국 정부가 약 3200만달러와 지연이자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중재지인 싱가포르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은 지난달 20일 “한국정부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정부가 이날 항소를 포기하면서 ISDS의 배상안은 확정됐다. 정부가 배상원금과 지연이자(2015년 7월17일부터 연 5% 복리)를 포함해 메이슨에 배상해야 하는 금액은 약 860억원으로 책정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국제 재판에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이 확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도 총 1300억원 가량을 배상해야 한다는 PCA의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해 중재지인 영국 상사법원에서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엘리엇 사건의 경우 법원이 1심에서 각하 결정을 내릴 때 사건 내용에 대한 실체 판단을 하지 않은 반면 이번 사건은 법원이 실체 판단까지 마무리했기 때문에 항소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사건 역시 항소심에서 결과를 뒤집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승산이 없는 국제 재판으로 지연이자만 늘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과 관련 ISDS 판정에 처음 불복 소송을 제기할 때 법무부장관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다. 2023년 7월 법무부는 PCA의 엘리엇 판정에 불복해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한동훈 당시 장관은 브리핑에서 “저는 이 사건을 수사해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관여한 사람이고 누구보다 그 전모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당시 합병 과정에 개입한 당사자에게 배상금을 부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왜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이슨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하느냐”며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회장 등 형사 유죄가 확정된 이들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