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제주 성안올레 올래? 돌담에 속삭이는, 천년 탐라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제주 성안올레 올래? 돌담에 속삭이는, 천년 탐라

  • 제주 | 글·사진 정은주 여행작가
1코스 산지등대

1코스 산지등대

따스한 봄날, 성안올레를 걷는다. 탐라부터 이어진 천년 숨결이 깃든 길이다. 제주 삼신인 탄생 신화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들.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던 이야기들이 길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나온다. 제주시 원도심을 무대로 한 성안올레는 느긋한 걸음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코스다. 긴 세월 실타래처럼 엉킨 수많은 기억을 풀어가다 보면 지금껏 알던 제주가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제주항

제주항

달팽이처럼 걷는 천년의 길

성안올레는 이름 그대로 ‘성안’을 둘러보는 도보 여행길이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일부 복원된 구간이 있긴 하다) 일제강점기 전만 해도 원도심 일대에 견고하게 쌓아 올린 제주읍성이 있었다. 탐라국이 고려에 완전히 편입되면서 이전에 있던 성곽을 활용해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을묘왜변 이후 산지천을 성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성벽 구역을 넓게 확장하기도 했다.

제주를 지키는 요새이자 마지막 보루였던 제주읍성은 식민지 시절 일제에 의해 모두 헐려 나갔다. 자원 수탈을 위해 제주항을 만들면서 성벽을 허물고 거기서 나온 바윗돌로 바다를 메웠다. 제주를 오가는 선박 아래 유구한 세월을 품은 유물이 묻혀 있는 셈이다. 이처럼 조선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간 제주읍성의 역사는 탐라국 시대까지 맞닿아 있다. 성벽에 둘러싸여 있던 원도심이 천년 세월을 품은 고도(古都)이듯 성안올레 또한 천년 역사를 따라 걷는 길이나 다름없다.

성안올레는 산지천에 접한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을 시종점으로 하는 원형 코스로 이뤄져 있다. 1코스는 건입동과 사라봉을 둘러보고, 2코스는 탑동광장을 거쳐 용연계곡으로, 3코스는 동문시장을 지나 삼성혈을 다녀오게 된다. 코스 당 5~6㎞여서 체력에 자신 있다면 하루 만에 모든 코스를 완주할 수도 있다. 각 코스가 품고 있는 매력을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선 한 번에 하나씩, 달팽이 같은 느린 걸음으로 걷기를 추천한다. 코스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이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성안올레 1코스 날씨가 중요했던 이유

성안올레 1코스는 초입부터 역사적인 흔적과 조우하게 된다. 출발점 모퉁이를 돌아서면 가파른 계단길이 나타나는데 목조 덱 아래 성벽 일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계단 옆길로 비켜서면 담쟁이덩굴이 뒤덮은 단단한 석벽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제주읍성이 통째로 바닷속에 빠져버린 마당에 어떻게 이곳만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을까. 성벽에 덧씌워진 계단은 당시 일제가 세운 측후소(현 기상청)로 통했다고 한다. 수탈한 자원을 실은 배가 안전하게 오가려면 무엇보다 기상 예보가 중요했을 터. 이 때문에 측후소 계단길은 그대로 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1코스 동자복

1코스 동자복

돌하르방과 닮은 듯 다른 동자복은 길가에 선 마스코트 같다. 이렇게 커다란 석상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오래전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신성하게 여겨왔다. 흥미로운 건 2코스에도 이와 비슷한 서자복이 있다는 것이다. 각각 동쪽과 서쪽에 세워져 서로 마주 보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1코스 두맹이 골목

1코스 두맹이 골목

수많은 설화가 덧입혀진 건입동 벽화길을 지나면 100년이 훌쩍 넘은 산지등대가 나타난다. 등대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깊이 잠들어 있을 성벽 바윗돌들을 떠올려본다. 사라봉 아랫자락에는 제주 항일의 역사가 깃든 모충사가 자리해 있다. 정겨운 벽화들이 그려진 두맹이골목과 운주당지구역사공원을 거쳐 동문시장에 접어들면 길은 얼추 마무리된다.

제주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동문시장은 해방 이후 남수각 하천 일대에 노점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졌다가 1950년대에 큰불이 나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온 것이다. 시장 안은 사계절 싱그러운 감귤 향이 감돈다. 각종 기념품과 독특한 주전부리까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시장 안에서 지갑이 다 털릴지 모른다.

2코스 용연계곡

2코스 용연계곡

성안올레 2코스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근현대사

푸른 바다와 함께 걷고 싶다면 2코스가 제격이다. 서부두 방파제 끝에서 이어진 해안로가 바다를 따라 1㎞ 남짓 이어져 있다. 호텔과 대형마트, 관광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자리는 원래 새까만 먹돌이 널린 바닷가였다. 1980년대부터 대규모 매립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당시 환경오염과 어장 황폐화 문제로 도민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바닷속 생명체가 줄어들고, 파도를 막아주는 완충 구간이 사라진 탓에 때때로 성난 물결이 방파제를 넘어 흰 포말을 길가에 쏟아낸다. 탑동 해안로에 숨은 뒷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개발과 보전의 문제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한다.

2코스 서자복

2코스 서자복

길은 서자복이 있는 용화사 뒤편으로 이어지고, 비밀통로 같은 계단길을 오르면 제주시 최고의 절경을 만나게 된다. 한라산 물줄기와 제주 앞바다가 합수되는 길목에 빚어진 용연계곡이 주인공이다. 기암괴석과 투명한 물빛이 신비로움을 더하는 계곡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배를 띄우고 즐기던 이른바 신선놀음 코스였다. 현시대의 풍류는 계곡 사이에 걸쳐진 구름다리를 걷는 것이다.

무근성길을 지나 관덕정에 이르면 조선시대 성 앞을 지키던 거대한 돌하르방이 탐방객들을 맞는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관덕정은 4·3사건의 아픈 역사가 배어 있는 장소이다. 1947년 3·1절 행사 도중 관덕정 앞 광장에서 기마 경찰이 어린이를 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에 항의한 사람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했다. 4·3이 일어나게 된 계기다. 4·3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길을 살짝 벗어나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을 방문하기를 권한다. 근현대사의 뼈아픈 역사를 가슴에 안고 다시 길을 나서면 다섯 분의 선현을 모신 오현단과 성벽에 설치된 망루 초소였던 제이각을 차례로 둘러보게 된다. 칠성로 상점가를 거쳐 북수구 광장으로 내려오면 2코스도 완주한 셈이다.

성안올레 3코스 탐라국이 태어난 그곳

마지막 3코스는 산지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동문시장과 제이각을 거쳐 곧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탐라 건국 신화의 발상지인 삼성혈에 닿는다. 세 명의 신인(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이 땅에서 솟아났다고 전해지는 성지로 삼성혈 안쪽에 3개의 모흥혈이 보존되어 있다. 이들은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와 혼인해 각자 부락을 만들고 탐라국의 기초를 세우게 되는데 제주 고유 성씨인 고씨, 양씨, 부씨의 뿌리가 바로 이들이다. 지금도 삼성혈에서 삼신인을 기리는 제례가 거행되고 있으며 매년 12월에는 제주도지사가 초헌관을 맡는 건시대제(乾始大祭)가 봉행된다. 4월 초부터 삼성혈 경내에는 벚꽃이 가득 피어나는데 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은 신화보다 더 비현실적인 순간으로 남는다.

3코스 삼성혈

3코스 삼성혈

길은 보성시장과 광양성당 쪽으로 이어지지만 삼성혈과 바로 이웃해 있는 자연사박물관을 먼저 관람하는 것도 괜찮다. 제주도 역사, 문화, 생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대한 공간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후에는 뒤편으로 이어진 신산공원에서 잠시 쉬어 가거나 길 건너 국수거리에서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다.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산지천으로 되돌아오면 두 발로 걸어 떠난 시간 여행은 마무리된다. 길은 끝났어도 천년의 시간은 마음에 고스란히 남는다.

알고 떠나자

4~11월에 진행되는 ‘성안올레 도보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탐방길이 훨씬 풍성해진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30분부터 낮 12시까지 각 코스마다 해설사가 동행해 원도심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 준다. 제주착한여행 누리집을 통해 참가 신청을 하면 된다. 예약금 5000원은 프로그램을 마친 후 지역화폐인 탐나는전으로 되돌려준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만든 오디오 가이드 앱 ‘오디’에서도 성안올레 1, 2코스 해설을 무료로 제공한다.

  • AD
  • AD
  • AD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