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정보라. 김창길기자
정보라 작가(49)가 휴고상, 네뷸러상과 함께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꼽히는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윤하가 휴고상과 네뷸러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한국인 작가의 한국어로 쓰인 작품이 3대 SF상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상을 주관하는 필라델피아 SF 학회(PSFS)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 시애틀 SF 판타지 컨벤션 노웨스콘47(Norwescon47)에서 열린 제43회 필립 K. 딕상 시상식에서 미국 작가 브렌다 페이나도의 <타임 에이전트>(Time’s Agent)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2위 격에 해당하는 특별 언급(Special Citation) 수상작에는 영국 작가 아드리안 차이코프스키의 <에일리언 클레이>(Alien Clay)가 차지했다. 정작가의 단편소설집 <너의 유토피아>(Your Utopia)는 최종 후보 여섯 작품 중 유일한 번역 소설이다.
미국에서 페이퍼백(보급판) 오리지널로 출판된 SF에 주어지는 필립 K. 딕 상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을 쓴 미국 SF 거장 필립 K. 딕(1928∼1982)을 기리기 위해 1983년 제정돼 올해로 43회째다.
정작가는 이날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시상식에 참석해 <너의 유토피아> 수록작인 ‘그녀를 만나다’ 마지막 부분을 영어로 낭독했다. ‘그녀를 만나다’는 고(故) 변희수 하사를 기리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쓴 소설이다. <너의 유토피아>는 2021년 출간된 정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의 영문판으로 지난해 미국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시사주간지 ‘타임’이 ‘2024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바 있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 소설 <머리>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작가는 2017년 출간한 SF·호러 소설집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2024년 독일 라이프치히도서전에서 번역서 부문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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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가는 “저주와 원한을 믿는다”며 뒤틀린 세상을 비판하는 글을 써왔다. 그의 글은 소외받고 부당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을 위한 위로이자 가해자들을 향한 경고가 됐다. 정 작가는 노동·인권운동 현장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023년 6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데모하는 이유를 두고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 천막을 지켰고, 차별금지법과 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 나갔다.
그는 지난달 ‘윤석열 파면’을 헌법재판소에 촉구하는 한줄 작가 성명에 “내란 수괴 처단하고 평등사회 건설하자”라고 했다.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지난 4일 경향신문 특별기고에선 “탄핵과 파면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열린 광장에서 평등과 연대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미래의 희망을 한 조각이라도 엿보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니까 우리는 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다. 이제 평등과 연대와 안전을 대세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파면 이후의 세계는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 기회가 왔다”고 썼다.

<너의 유토피아> 영어 번역본 ‘Your Utopia’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