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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장애인차별철폐의날 기획

중증 장애 자녀 보호자들은 ‘돌봄 지옥’에서 산다

장애인 자녀를 둔 임숙정씨(왼쪽부터), 이형숙씨, 이정욱씨, 황선희씨가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사진 크게보기

장애인 자녀를 둔 임숙정씨(왼쪽부터), 이형숙씨, 이정욱씨, 황선희씨가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아이가 미워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에 갔어요.”

뇌병변장애와 인지장애가 있는 열다섯 살 딸을 둔 황선희씨(51)는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사무실에서 기자에게 말했다. 황씨의 딸은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동은 물론 식사도 홀로 할 수 없다. 최근엔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는 일이 많아져 다니고 있는 특수학교에서도 일찍 귀가한다. 계속 울부짖는 딸을 달래는 것이 황씨 일과의 대부분이다. 황씨는 어느 날 “‘뼈저리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씨에겐 어려움을 털어놓을 곳도 없었다.

경향신문은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맞아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장애인 자녀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상태로 돌봄 노동에 갇혀 있었다. 사회는 차별의 시선을 숨기지 않았고 이들은 더욱 고립됐다. 가족 전체가 삶의 끝자락에 설만큼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황씨와 함께 이형숙씨(59), 임숙정씨(49)도 만났다. 여덟 살 자폐증 아이를 키우는 윤모씨(42)는 지난 18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돌봄 지옥’ 속 고립되는 보호자

2024년 4월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이 4·20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열고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인간다운 삶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사진 크게보기

2024년 4월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이 4·20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열고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인간다운 삶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열여섯 살 아들을 둔 임씨는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 18층 집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보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완벽하게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임씨처럼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 정신과에 내원해 우울증 등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자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거나 시도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 중증 장애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도 종종 있다. 지난해 2월 서울 서대문구에서 40대 아버지가 뇌병변 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숨진 채로 발견됐다. 2023년 10월 대구에선 60대 아버지 A씨가 중증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미수에 그쳐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위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에서 시작해 고립에서 극에 달한다. ‘활동지원 시간 바우처’가 있지만 턱없이 모자라다. 교대 돌봄자가 없으면 온전히 돌봄에만 묶여 있어야 한다. 임씨와 황씨, 윤씨는 모두 아이의 ‘주돌봄자’가 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주변에 고민을 얘기하는 것 조차도 어려운 일이다. 이씨는 “(비장애인) 엄마들은 제가 아이 얘기를 하면 화성에 있는 돌 모양을 얘기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라며 “얘기해도 잘 모르니 고민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황씨는 “친구들과 대화의 공통 주제도 사라지고, 가족 모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때가 많아 이제 아이는 아예 데려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씨는 중증 장애인을 키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의 사례도 들었다. 황씨는 “‘아이 똥 싸는 것도 예쁘다’며 웃던 친구”라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누가 한 사람이라도 도와줬으면 그 친구는 살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시선은 이들을 더 고립시킨다. 윤씨는 자녀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가 “이런 아이는 시설로 보내라, 가정 분위기가 얘 때문에 다 깨지지 않냐”는 기사의 말을 들었다. 임씨도 자녀를 데리고 식당에 갔다가 쫓겨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사람들이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수근대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찾고 찾아야 닿는 돌봄과 교육

장애인 학부모들이 지난해 4월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수학교가 들어서기로 한 성동구 성수공고 부지에 국민의힘 윤희숙 후보가 특목고를 신설하겠다고 한 총선 공약 폐지를 촉구하며 무릎을 꿇은 채 장애인 학교 설립을 호소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장애인 학부모들이 지난해 4월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수학교가 들어서기로 한 성동구 성수공고 부지에 국민의힘 윤희숙 후보가 특목고를 신설하겠다고 한 총선 공약 폐지를 촉구하며 무릎을 꿇은 채 장애인 학교 설립을 호소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황씨는 딸의 학교 입학을 위해 유목민처럼 살았다고도 했다. 지난 6년여간 인천, 경기 고양시, 서울 마포구로 이사를 반복했다. 초등학교 입학 3년 전부터는 ‘특수학교 투어’를 했다. 특수학교라고 해도 모든 장애인들을 받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각 학교 상황에 따라 지난해엔 휠체어를 탄 중증 장애 학생을 받아줬지만, 올해는 휠체어를 탄 학생은 추가 입학할 수 없다고 거부하기도 한다. 황씨는 “학교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받아주는 곳을 찾아 쫓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임씨의 자녀도 부천시의 특수학교까지 1시간 걸려 통학한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4년 특수교육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전국 특수교육 대상자는 11만5610명으로 2023년보다 5% 늘었다. 하지만 특수학교가 수용할 수 있는 학생 수는 같은 해 2만6084명에 불과하다. 교육 대상자의 22.6%만 수용 가능한 셈이다. 윤씨는 “입학 경쟁이 심해 면접에서 누가 더 (장애 정도가) 나쁜지 겨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중증도가 높으면 노동 강도가 더 셀 수밖에 없어 활동지원사들이 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황씨는 “아이가 성장해 몸집이 커지면서 지원사들이 ‘돌보기 어렵다’며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운이 좋아야 지원사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24시간 아이를 혼자 돌보고 있다. 윤씨는 “지원 서비스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사들의 처우가 더 나아져야 지원하는 사람도 늘 것 같다”며 “저라도 최저시급을 받고 이 아이들을 봐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고민 나눌 ‘커뮤니티’와 ‘폭넓은 지원 정책’도 필요해

부모들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황씨에게 활동지원사와 자녀의 치료 교사와 만나는 시간은 삶의 ‘버팀목’이다. 자녀의 상태를 공유하는 시간에 황씨는 ‘힐링’ 된다. 황씨는 “그런 시간이 있어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씨는 “같은 위로를 해도 비장애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은 처지인 사람이 하는 것은 다르게 다가온다”며 “자조 모임(질병 등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 모임)이나 동료 상담이 힘이 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임씨는 “현재는 비영리단체 등 민간영역에서 이런 모임을 꾸리는 경우가 많은데, 공공영역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 대상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씨는 “차상위 계층이 아닌 이상 모든 지원제도에 있어서 자부담금이 따라온다”며 “중증 장애인의 경우 집에서 식사를 할 때, 앉아있을 때 모두 보조기기가 필요한데 지원이 부족하니 부담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생애주기에 맞는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수학교 졸업 후 갈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 등도 한정된 인원으로 입소하기가 쉽지 않다. 이씨는 “한국은 성인이 되면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되는 세상 같다”며 “장애아들이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갈 곳이 없고 지원도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없을 때도 아이가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공공 영역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가 있는 자녀가 최소한의 독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씨는 “보호자들이 사망한 후에도 아이가 살 수 있도록 독립시키고 싶은 것이 솔직한 소망”이라며 “하지만 열악한 자립시설 등을 보면 독립이 어렵다”고 말했다. 임씨에겐 슬픈 소망도 있다. 임씨는 “가장 바라는 것은 아이가 내가 없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아이가 나보다 하루만 더 일찍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야 제가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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