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조작·부가가치세·덤핑…비관세 장벽 8개 나열
“우리 관세에 진지…진정한 상호주의 구축해야”
보잉 항공기는 인도 불발, DHL은 화물 배송 중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국가별로 부과한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전 세계 무역 상대국의 ‘비관세 부정행위’라며 8가지 유형을 거론했다. 상호관세 유예 조치로 각국과 협상에 나선 가운데 관세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기선제압을 시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 트루스소셜에 무역 상대국이 그동안 미국을 상대로 해왔다고 주장하는 비관세 부정행위 8가지 항목을 나열했다. 통화 조작(환율 조작)을 첫 번째로 꼽은 뒤 관세 및 수출 보조금 역할을 하는 부가가치세, 원가보다 낮은 덤핑, 수출 보조금과 기타 정부 보조금을 적었다.
이어 각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농업 기준과 기술 기준도 비관세 장벽으로 꼽았다. 농업 기준 사례로는 유럽연합(EU)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 수입 금지를, 기술 기준 사례로는 일본의 볼링공 테스트를 제시했다. 그는 또 위조, 불법 복제, 지식재산권(IP) 도용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에 따라 연간 1조달러(약 1424조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세 회피를 위한 환적도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른 게시물에선 “해방의 날(4월2일 상호관세 발표일) 선포 이후 많은 세계 지도자와 기업 경영자가 관세 완화를 요청하러 나를 찾아왔다”며 “우리가 진지하다는 점을 세계가 알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수십 년에 걸친 (미국에 대한) 부당 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쉽진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위대한 우리 나라의 부를 재건하고, 진정한 상호주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샤먼 항공에 인도 예정이었으나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생산기지로 돌아온 보잉 737 맥스 비행기와 DHL 익스프레스 로고. 로이터연합뉴스·픽사베이
트럼프발 관세 전쟁 여파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 샤먼 항공에 인도될 예정이던 미 보잉사 맥스 737 항공기는 전날 워싱턴주 시애틀의 보잉 생산기지로 돌아왔다. 이 항공기는 샤먼 항공 소속을 뜻하는 도색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관세 전쟁 탓에 괌과 하와이를 거쳐 8000㎞ 비행 끝에 시애틀로 반납됐다. 신형 보잉 맥스 737 항공기 시장가치는 약 5500만달러(약 780억원)에 달하는데, 미·중이 100%를 웃도는 관세를 주고받은 상황에서 중국 항공사가 이를 인도받으면 관세 부담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로이터는 국제 특송기업 DHL 익스프레스가 관세 정책에 따라 21일부터 800달러가 넘는 물품의 미국 배송을 중단하기로 했다고도 보도했다. 기존에는 최대 2500달러(약 354만원) 물품까지는 간단한 서류 작업으로 미국에 보낼 수 있었지만, 트럼프 정부의 새 관세 정책과 함께 지난 5일부터 세관 검사가 강화되면서 기준 금액이 800달러(약 113만원)로 낮아진 탓이다. DHL은 이에 따라 정식 통관절차를 거쳐야 하는 물품 비중이 늘면서 배송 지연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달 2일부터는 800달러 미만 소액 물품에 미국 수입 관세를 면제하던 ‘최소 허용 기준 제도’(de minimis)도 폐지될 예정이다. 이런 소액 물품의 절반 이상은 전자상거래업체 테무와 쉬인 등 중국산 초저가 상품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2일부터는 이들 물품에도 120% 관세가 부과된다. 앞서 홍콩 우정국은 이에 대한 대응 조처로 오는 27일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소포 접수를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