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간보기’가 목불인견이다. 스스로 대선 출마설을 피우면서, 정작 언론에 보도된 출마설엔 가타부타 말이 없다. 20일 공개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한 대행은 “(대선 출마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나의 권한은 헌법과 관련 법률에서 비롯되며, 권한대행과 선출된 대통령 간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에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대행의 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을 정지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외국 독자들이 한국 사정에 어둡다고 이렇게 대놓고 거짓말해도 되나. 한 대행은 내란 사태를 막지 못해 나라와 국민을 위기에 빠뜨린 국무총리로서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 할 대선판에 선수로 뛰겠다는 야욕을 품고 있으니 참으로 우려스럽다.
심각한 것은 이런 한 대행이 대미 관세 협상을 서두르고, 그것도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일 미 CNN 인터뷰에서 “미국에 맞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한 대행은 FT 인터뷰에서도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에 미국이 원조, 기술 이전, 투자, 안전 보장을 제공해줬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마땅히 밝혀야 할 대선 출마 여부는 감추면서, 모호성이 기본 전술인 외교·통상에선 상대국에 패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런 자를 언제까지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에 놔둬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
오는 24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의 ‘한·미 2+2 협의’가 열린다. 한 대행은 “이번 대미 협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협상은 최대한 미루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 급한 쪽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이지 한국 국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럽고 막무가내식 관세 정책에 미국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비판 여론도 들끓고 있다. 한국보다 1주일 먼저 협상을 개시한 일본도 미국이 요구하는 속도에 발 맞추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통령 윤석열 파면으로 권력 공백 상태인 한국은 미국에 협상을 미룰 논리와 명분이 충분하다. 40여일 후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데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한 대행이 나설 일이 아니다. 지금 관세 협상은 예비적 논의여야지, ‘저자세·속도전’으로 불가역적인 합의를 하면 안 된다. 한 대행은 관세 협상에서 손 떼고, 종국적 협상은 새 정부에 넘겨야 한다. 대선에 출마할 요량이라면 당장 총리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 TF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