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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을 인수분해 해보니

[이범의 불편한 진실]사교육을 인수분해 해보니

사교육 없이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경쟁적 사교육 이외에
보완적 사교육 수요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대입제도를 통해
사교육을 억제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한국처럼
경쟁 압력이 심한 상황서
수능을 축소하거나 없애고
내신 위주로
선발한다고 해서
사교육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불평등, 경쟁, 사교육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불평등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처럼 대학교육을 상향 평준화시키려는 정책에 대해 냉소적인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들의 관심이 ‘경쟁’이 아니라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정량적 연구에 의하면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계층 간 이동이 원활한 편이고,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소득불평등(지니계수)은 줄곧 감소하고 있다. 통념과 다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은 왜 이렇게 격렬한 교육 경쟁이 일어나는지를 다소 엉뚱하게 설명한다. 예컨대 중앙대는 합격선이 상위 5~7% 정도로 충분히 좋은 대학인데, 기를 쓰고 더 상위의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것은 문화(아시아적 교육열) 때문이라거나 상징자본(학벌)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서울대가 중앙대보다 3배 좋은 대학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있다. 학생 1인당 투입되는 교육비(연구비는 제외한 수치다)가 3배나 차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의 질이 다르다. IT 개발자들 사이에 2000년대부터 거론되는 이야기가 있다. 어셈블리어,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컴파일러 등을 모두 끝까지 배우는 곳은 카이스트와 더불어 서울대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울대가 더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며, 그래서 졸업생의 능력치가 더 높다. 두 대학을 입학할 때 존재했던 약간의 능력 차이가 졸업할 때에는 한층 증폭되는 구조다.

마찬가지로 ‘경쟁’과 ‘사교육’ 역시 등치되는 말이 아니다. ‘경쟁’에 의한 사교육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교육 자체로 인한 사교육의 비중이 만만찮다. 통계청은 매년 사교육비 조사를 할 때 학부모에게 ‘사교육을 이용하는 목적’을 객관식으로 묻는다. 응답을 보면 ‘보완적 사교육’(학교수업 보충)이 ‘경쟁적 사교육’(선행학습·진학 준비·불안 심리)과 비슷한 비중으로 나온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서는 제대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세대 전과 비교해보면, 숙제의 양이 상당히 줄었다. 공부를 학(學·배움)과 습(習·익힘)으로 나눠본다면, ‘습’의 과정을 학교가 주도하는 고전적인 방법이 숙제다. 그런데 그것이 지난 한 세대 동안 꾸준히 감소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방과후 보충교육(이른바 ‘나머지 공부’)은 줄어들다 못해 거의 멸종 직전이다.

숙제와 나머지 공부가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교권’과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교권은 관습과 문화였을 뿐 법령과 제도로 정비되지 않았다. 따라서 ‘숙제가 많다’거나 ‘아이를 남기지 말라’는 민원이 제기될 때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일종의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숙제나 나머지 공부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이 약화되었다는 견해는 일종의 착시이며, 주된 문제는 교권의 법령화·제도화가 방기되었다는 점이다(2023년 9월19일자 칼럼 ‘진보는 왜 교권을 외면했나, 보편적 약자의 종말’ 참조).

공교육으로 인한 사교육 만만찮아

핀란드 교육을 마케팅용 이미지로 낭비해버린 한국의 진보 교육계는 이 점에서 반성해야 한다. 핀란드에서는 초등 1학년부터 꾸준히 숙제를 내준다. 수업 시간에 보조교사가 한 그룹의 학생들을 따로 지도하는 장면은 흔하고, 의무교육 9년중 방과후 보충교육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 학생이 30%에 달한다. 심지어 초등 시절부터 유급이 있다. 여러 지원을 해도 성취도가 일정 수준 이하인 학생은 유급을 시킨다. 대단한 교권이자, 대단한 책무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인공지능 ‘교과서’를 도입한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공교육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학(수업)에 인공지능을 도입해 효과를 보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술적 플랫폼에서 교사의 개성이나 세밀한 노하우를 살리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습(숙제)은 인공지능을 통해 성과를 내기 쉽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맞춤형으로 숙제를 제시하고 관리하고 교사에게 보고하는 것은 굳이 인공지능이 아니어도 알고리즘 설계를 잘하면 가능하다. 이는 공교육의 책무성을 높이고 ‘보완적 사교육’을 줄일 기회가 된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더하면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학생의 논리적 오류를 짚어낸다든가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이 프리미어리그 축구에 대해 대화하며 영어 실력을 높이도록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경쟁적 사교육’을 일으키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일단 ‘구조적 요인’으로서 대학 서열(대학 간 격차) 및 학과 서열(직업 간 격차)을 꼽을 수 있다. 대학 서열은 다시 학벌(동문), 평판(명성), 소재지(특히 서울 소재 여부), 교육 품질 등으로 인수분해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육 품질, 또는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이다(2021년 9월2일자 ‘대학 서열은 돈의 서열이다’ 참조). 학과 서열은 대학 서열보다 노동시장의 영향이 더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영역이다. 2010년대 개업의 평균소득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의대 선호 현상이 극단화되었다든가, IT 개발자 대우가 좋아지면서 2010년대 이후 컴퓨터공학과 선호도가 높아진 것, 교대의 인기가 높아지다가 최근 낮아진 것 등이 모두 노동시장의 현황과 전망을 반영한다.

경쟁적 사교육을 일으키는 요인에는 ‘구조적 요인’, 즉 대학 간 격차 및 직업 간 격차뿐만 아니라 ‘기술적 요인’, 즉 전형요소의 난이도·복합성·연계성 등도 작용한다. 그중 ‘난이도’란 예를 들어 ‘킬러 문항’이 많이 출제될수록 사교육이 증가할 것이라는 얘기다. ‘복합성’이란 여러 가지 전형요소를 동시에 요구하면 사교육 의존도가 커진다는 얘기다. 철인5종 경기보다 철인10종 경기가 버거운 법이니까. 복합성이 유난히 높았던 전형으로 1994~1996학년도의 수능·내신·본고사 합산, 2008학년도 정시전형의 수능·내신·논술 합산, 전형요소가 다양한 입학사정관제 및 학종(특히 전형요소가 축소되기 전인 2010년대의)을 꼽을 수 있다. ‘연계성’이란 통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통해 그 전형요소가 얼마나 대비되는지를 나타낸다. 현존하는 주요 전형요소 가운데 고교 교육과 연계성이 가장 낮은 전형요소는 논술이다. 유럽 국가들의 대입 시험은 대부분 논술형인데, 이는 과목별 출제이고 철저하게 고교 교육과정과 연계되어 있다. 학교 기말고사 문제와 거의 같은 문항이 대입 시험에 나온다. 반면 한국의 논술고사는 과목도 불분명하고 고교 교육과정의 연계성이 낮아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해야 한다.

수능과 내신, 사교육 유발 엇비슷

나는 경쟁적 사교육에서 ‘구조적 요인’과 ‘기술적 요인’의 비율이 7 대 3 내지 8 대 2 정도 된다고 본다. 즉 대입제도를 통해 사교육을 억제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입시제도 변경을 통해 사교육을 줄이는 데 성공한 바 있는데, 당시 정시전형에서 수능·내신·논술을 합산 반영하던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해체한 것, 그리고 외고 입시에서 면접 이외의 평가를 폐지하고 중학교 내신성적을 영어만 반영하도록 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수능이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김동춘 교수는 지난해 10월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사교육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전형이 ‘수능’이라고 답한 비율이 압도적(61.1%)이었음을 지적하는데, 이는 교사 대상 설문(국회 강경숙 의원실 조사) 결과임에 유의해야 한다. 과거에도 교사 대상 설문에서 유사한 특성이 나타나곤 했다.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2017년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사교육이 가장 많이 유발되는 전형’을 설문한 결과, 내신(학생부교과)이 수능(정시)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였다. 물론 당시 학생부교과전형의 정원이 정시전형보다 2배 정도 많았음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2016년 8월 국회 송기석 의원실에서 학부모에게 전형요소별 사교육 유발도를 5점 척도로 설문한 결과 수능(4.2)이 내신(4.0)보다 사교육을 더 많이 유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한국처럼 심한 경쟁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수능을 축소하거나 없애고 내신 위주로 선발한다고 해서 사교육이 줄어들지는 미지수이다.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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