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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짱깨’ ‘페미’ 연상 퀴즈

연상 퀴즈에서 정답을 빨리 맞히려면 당연히 출제자와 생각이 비슷해야 유리하다. 사과는 빨갛지. 바나나는 노랗고, 이를 다룬 노래 가사에서 다음에 오는 것은 기차다. ‘길다’라는 단어에 대해 연상해야 하는 정답은 ‘기차’로 좁혀진다. 연상 작용은 필연적인 인과관계나 합리적 근거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릿속의 단어 지도를 문제와 얼마나 유사하게 형성하고 있는지 혹은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용례를 얼마나 공유하는지가 중요하다. ‘중국’이라는 단어에 바로 ‘짱깨’라는 말을 떠올린다든가, ‘여성’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페미’라고 반응한다든가.

‘빨갱이’도 한국 사회에서 자라나면서 거듭 접할 수밖에 없었던 연상 퀴즈였다. 나는 사실 이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파르티잔’을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당원이나 동지 등을 뜻하던 단어가 나중에 비정규 전투원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한국어에서는 ‘빨치산’으로 변했다. ‘룸펜’은 ‘놈팽이’가 되었고, 붉은색을 사용하는 공산주의자는 반공의 이름 아래 ‘빨갱이’로 굳어졌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이 사전적인 의미대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흔한 사례로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가 불거지면 빨갱이라는 말을 볼 수 있는데, 이때 빨갱이가 욕이나 비하어라는 것은 명확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사례의 어디에도 공산주의가 없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새말’ 또는 ‘신어(新語)’ 분류를 따른다면 ‘빨갱이’는 B 어군에 속한다. 작중 배경인 오세아니아는 ‘빅 브러더’로 대표되는 ‘영사’ 정부가 강력한 감시 체제를 펼친다. 정부는 사람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중이다. 이 언어는 유일무이하게도 갈수록 어휘가 줄어든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A 어군의 단어들은 매년 인위적으로 삭제된다. ‘좋은(good)’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나쁜(bad)’은 삭제되고 ‘안 좋은(ungood)’이 남는다. 후대의 새말 사용자는 불호나 반대를 표하고 싶어도 ‘나쁘다’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런 어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B 어군의 단어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예를 들어 ‘옛 사고’는 이전 시대의 사고방식을 뜻하지만, 언제나 비난의 의미로 사용된다. 자유, 정의, 민주주의, 과학처럼 이미 삭제된 불온한 개념을 연상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새말 사용자는 ‘옛 사고’를 이단처럼 기피한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이단인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어휘가 없을뿐더러, 자세히 생각하는 건 사상죄에 해당한다.

B 어군 단어는 최대한 간략하고 발음하기 쉽게 다듬어진다. “이름을 단축하면 그 이름에 붙은 다른 연상적 의미가 제거”된다. 새말의 목표는 사람들의 독립적인 사고를 금지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고차원적인 뇌 중심부를 전혀 쓰지 않고도 후두부에서 말이 술술 나오게 하는 것이 새말이 바라는 바였다.”

물론 <1984>는 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연상 퀴즈의 정답을 줄줄이 맞히려면 문제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작중 디스토피아의 통치 원리다.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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