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는 일본인들 사이에 흔히 하는 말이다. 꽃 중 최고는 벚꽃이고, 벚꽃이 지듯 죽음을 맞이하는 무사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원래 매화를 좋아했다. 매화는 당나라에 파견된 사절단에 의해 일본에 도입됐다. 선망의 대상이던 중국의 꽃이라 귀족들은 모두 매화를 사랑했다. 그러다 무사가 등장하던 가마쿠라 시대부터 벚꽃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이 항시 공존하던 무사들은 인생의 덧없음을 벚꽃에서 찾았다. 그들은 낙화의 무상함을 자신들의 삶에 투영하면서 벚꽃을 사랑했다.
벚꽃을 사랑한 대표적 인물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 도요토미는 나라현의 요시노산에서 다이묘(영주) 수천명을 모아 놓고 ‘요시노 벚꽃놀이’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요시노산은 벚꽃 명소로 유명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한 그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 주기 위해 행사를 열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산속에서 그는 인생의 무상함보다는 찬란함을 느꼈을 것이다.
1598년 그는 교토의 사찰 다이고지에서 ‘다이고 벚꽃놀이’를 개최했다. 늦은 나이에 낳은 자신의 후계자 히데요리의 출생을 기념하고 가문의 계승과 권위를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이를 위해 그는 700여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내 영화도 이 벚꽃의 아름다움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라고 외쳤던 도요토미. 그가 사랑한 벚꽃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덧없었다. 다이고 벚꽃놀이가 열린 지 두 달 뒤, 그는 병으로 세상을 떴다. 10여년 후에는 가문도 멸망했다. 다이고 벚꽃놀이를 계기로 매년 4월 두 번째 일요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벚꽃놀이 행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다이고지 경내에서 개최된다.
이후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에도의 명소에 벚나무를 심고 벚꽃놀이를 장려했다. 덕분에 에도의 서민들은 벚나무 아래에서 음식과 술을 나누며 연회를 즐기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의 벚꽃축제는 3월에 남쪽 가고시마부터 5월 북쪽 삿포로와 구시로까지 전국적으로 성행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벚꽃 사랑이 지금 일본의 벚꽃축제에 불을 지핀 셈이다. “일본인의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아침 해에 반짝이는 산벚꽃이라 하리.” 오늘날 일본의 정신과 벚꽃을 연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에도시대 일본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