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영국 런던 캠던의 어느 작은 공연장이었다. 사실 공연장이 컸는지 작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생생한 건 심장까지 울리던 노랫소리, 그리고 머리 위로 떠다니던 큰 노란색 공이었다.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발돋움한 콜드플레이가 기습 공연을 연 현장이었다. 무려 20년 전 일을 떠올린 건 그들이 한국을 8년 만에 다시 찾은 것뿐 아니라 이 ‘월클’ 밴드의 남다른 행보 때문이다.
지난 16일부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콜드플레이의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한국 공연을 하루 앞두고 고지된 안내문에 관객들은 술렁였다. 공연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을 포함한 금속·유리 재질 물병 반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연장에는 실리콘과 플라스틱 다회용 물병만 반입이 가능했다. 대신 주최 측은 곳곳에 음수대를 설치하고 멸균팩에 든 물을 판매했다. 불만 섞인 반응도 나왔지만 공연으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취지에 전반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지구는 소중하니까’.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해가 오갔다.
콜드플레이의 탄소배출 없는 공연의 여정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친환경 공연을 기획할 때까지 세계투어를 멈추겠다고 선언한 그들은 2022년 월드투어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로 ‘지속 가능한 공연’에 대한 답을 들고 돌아왔다. 투어 전 과정은 친환경으로 설계됐다. 공연장에 재활용 배터리와 태양광 설비를 설치했고 관객이 직접 전력을 생산하는 ‘파워 바이크’, 발걸음을 에너지로 바꾸는 ‘키네틱 플로어’를 도입했다. 공연장이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실험실이 된 것이다. 무대 장비는 재활용 알루미늄으로 제작되고 관객용 LED 팔찌, 특수효과용 색종이는 100% 생분해성 소재다.
이 인기 밴드의 이동 수단은 어땠을까? 지상에서의 운송과 이동은 전기차와 바이오 연료 차량을 우선하고 항공 이동 시에는 탄소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는 지속 가능 항공유(SAF)를 사용한다. 그 결과 콜드플레이는 이전 투어에 비해 탄소배출량을 59%나 줄였다고 한다.
친환경 공연은 이제 글로벌 트렌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를 배출해 악명 높던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2019년부터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 병·식기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음식 부스에서는 생분해성·나무 용기만 쓰고 일회용 물티슈조차 찾기 어렵다. 전자음악 축제인 벨기에의 투모로랜드는 RFID 팔찌와 연동된 디지털 보증금 시스템을 도입해 다회용 컵을 회수한다. 태국 샴발라 축제는 나아가 축제 기간 버려지는 월경용품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없는 월경제품을 소개하고 여성 전용화장실, 휴식공간을 마련했다.
유명 페스티벌에서 ‘친환경’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닌 기본값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단지 음악을 듣는 소비자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함께 실현하는 참여자로 초대된다.
이런 변화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콘서트장에서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일, 그리고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즐기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 나아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지도 모른다. 콜드플레이는 무대 위에서 그 가능성을 증명한다. 노란색 공은 이제 관객에게 넘어왔다. 다음 공연장에서 당신의 손에 들린 물병은 어떤 모습일까?

노정연 매거진L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