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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지금 절실한 건, 불평등과 제대로 싸우는 법

포르투갈의 총리 살라자르는 1932년부터 1968년 쓰러지기 전까지 무려 36년간 독재를 했다. 193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인기를 얻은 후, 폐쇄적인 권위주의에 기반해 입맛에 맞게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의회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폄하하며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대통령 직선제는 간선제로 바꿨다. 그는 수많은 이들을 잡아 가두고 추방하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감시하며 민주주의를 말살했다. 독재자는 우민화 정책과 함께 고집스럽게 잘못된 방향의 사회경제 정책을 고수했고, 나중에는 기술관료와 소수 엘리트가 그를 둘러싸고 인의 장막을 친 채 포르투갈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갔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식민지에 집착하고 산업 발전에는 한참 뒤처지게 됐다.

지난해 계엄의 밤에 시민들이 막아낸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자 꺼낸 이야기다. 살라자르와 마찬가지로 의회 따위는 불편하기 짝이 없어하며, 어쩌면 독재자를 꿈꾸었던 그가 계엄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민주주의를 말살할 뿐만 아니라 닫힌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듯이 한국 사회의 경제·문화·과학·복지를 큰 폭으로 후퇴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의 발전 속도가 가장 빨라진 시기에 말이다. 그날 밤 시민들은 계엄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큰 폭의 후퇴를 막았다. 1974년 포르투갈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구에 꽃을 꽂아주며 역사의 뒷걸음질을 막아낸 것처럼 말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4월25일을 ‘자유의 날’, 카네이션 혁명의 날로 기리고 있다. 우리도 계엄의 날 시민들의 용기에 대해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지킨 이후가 중요하다. 유럽 다른 국가와 달리 포르투갈에서는 약 50년 동안 극우 정당이 존재감을 갖지 못했다. 그랬던 극우 정당이 최근 선거를 통해 제3당으로 약진했다. 심화하는 불평등과 이민자, 기성정당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도 탄핵심판을 계기로 극우 정치가 광장과 정당에서 동시에 크게 성장했다.

복지, 특히 국민연금에 관한 이들의 포퓰리즘적 접근은 흥미롭다. 일부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복지 이슈를 가지고 세대를 둘러싼 박탈감과 적대감, 심지어는 분노를 부추긴다. 세대 간 공정이란 해법은 사실상 사회연대 및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해체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다. 세대를 아울러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몇몇 대선 주자들도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한다. 일부 정당은 국민연금의 이민자 정책까지 호도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겼다. 이는 분노가 과녁을 제대로 찾지 못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는 불평등이다. 고용 불안정이 심해지고 플랫폼 경제의 지배력이 커질수록 일주일에 7일을 일해도 소득은 부족하고, 유연해진 대자본은 살찐다. 가족, 친구와 삶을 누리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면, 그리고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항상 약자 혹은 패배자로 규정된다면 한국에서도 극우 정치가 번성해 주류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정치가 문제 해결에 무능하다고 비칠 때 이런 틈이 생기는 법이니까.

대통령 파면 이후 지금이 정당들이 사회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몇몇 추상적이고 파편적인 단어가 아니라 불평등과 불안정성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는 전망과 방법, 그리고 대안 사회에 대한 철학을 제시하는 것이 다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초저출생·초고령화 사회에서 사회복지 지출은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사회 전환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투자이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역사의 퇴행을 막아낸 시민의 성과를 그저 흘려보내는 대신 불평등과 제대로 싸우는 법을 내놓아야 한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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