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0만원 채무자 원심 파기
대출금을 갚을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여러 카드회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대출을 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람’을 속이는 행위가 있어야 사기죄가 인정되는데, 금융기관의 자동화된 대출 시스템은 ‘사람’이 아니어서 사기죄를 묻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64)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서울남부지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22년 6월 휴대전화에 설치된 카드회사 앱으로 대출상품을 발견해 2차례에 걸쳐 총 3450만원을 송금받았다. 검찰은 그가 빚을 갚을 의지와 능력이 없는데도 대출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대출을 받았다고 보고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1·2심은 사기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미 과다한 부채 누적 등으로 신용카드 대출금 채무를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도 신용카드를 사용했다면 사기죄에 있어서 기망행위 내지 편취의 범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뒤집고 사기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형법 347조 사기죄의 성립요건인 ‘기망행위’는 “사람에게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A씨가 속인 대상은 사람이 아니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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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A씨가 앱을 통해 정보를 입력한 뒤 대출금이 송금된 과정을 살펴보면“대출 신청을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에 피해자 회사 직원이 대출 신청을 확인하거나 대출금을 송금하는 등으로 개입했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A씨의 공소사실 행위는 사람에 대한 기망행위를 수반하지 않으므로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사실상 카드회사의 무분별한 대출 관행을 꼬집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카드회사들이 ‘사람이 대출 신청을 직접 접수·심사하고 돈을 내주는 방식’ 대신 앱을 통한 비대면 대출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게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