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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사랑한 모습 잊지 못해”···세월호 유족·성소수자 등 교황 추모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를 위로하고 있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를 위로하고 있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1일 선종한 뒤 한국에도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을 찾아 세월호 유족의 손을 맞잡았고, 위안부 피해자·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을 미사에 초대했다. 지난해에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했다. 이들은 “약자를 사랑한 교황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며 “약한 사람들을 대변한 교황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2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교황께서 노란색 배지를 달고 다가오시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며 울먹였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2014년 8월 김씨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34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교황은 광화문 광장을 찾아 이런 김씨의 손을 맞잡았다. 김씨는 “같은 국민에게도 질타와 조롱을 당할 때여서 너무나 힘들던 시기였는데 진정으로 손을 맞잡아 주셨다”며 “가끔 주교분들을 통해 교황께서 ‘세월호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물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약자를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랑과 위로를 평생 잊지 못할 거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축복을 받은 동성 커플인 유연씨(활동명)도 기자와 통화에서 울컥한 목소리로 “정말 의지했던 어른이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이라 말했다. 유연씨는 2023년 12월 교황청이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는 “교회에서 성소수자들이 배척당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는데 축복을 허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교회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겨 감격의 눈물을 흘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황의 말씀 이후로 본당 신부님께서도 ‘포용의 정신’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저도 엄마에게 커밍아웃할 용기를 냈었다”며 “제 인생의 많은 것을 바꾸신 분”이라고 말했다.

2014년 교황의 방한 당시 미사에 초청받았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를 잊지 못한다”며 황망해했다.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은 “현실에 부딪히면서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교황님 덕분에 우리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었다”며 “교황께서 소외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실 때마다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그날 받았던 묵주를 계속 간직하고 있다”며 “하늘에서도 교황께서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수자·약자를 대변하던 교황의 가르침을 우리 사회가 되새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약자들에게 전한 교황의 메시지는 단지 위로에서 그치지 않고 약자에 대한 전 세계적인 연대를 확장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운영위원이자 동성애자 아들을 둔 하늘(활동명)은 “다양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한 교황의 가르침을 이어가야 한다”며 “교황께서 인류에게 전하고자 한 정신은 종교를 초월해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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