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진보당 관계자들의 항의를 받으며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미 2+2 통상 협의’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한·미 양국이 오는 24일(현지시간) ‘2+2 통상협의’에서 통해 본격적인 관세 협상에 돌입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관세 전쟁을 선포한 이후 처음으로 양국 재무·통상 수장이 마주 앉는 만큼 미국 측에선 액화천연가스(LNG) 투자협력을 비롯해 소고기·쌀 개방 요구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6·3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둬 정치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 이번 협의는 미국 측의 요구사항을 듣는 ‘탐색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미 2+2 통상 협의’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2일 출국했다. 최 부총리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24일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미국무역대표부) 대표와 만나 ‘한미 2+2 통상 협의’를 할 예정이다.
최 부총리는 이날 출국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동맹을 새롭게 다지는 논의의 물꼬를 트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한국에 소고기·쌀 개방 요구하나
정부는 “한미 2+2 통상 협의 의제는 미국과 조율 중이며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으나 한국이 지난해 기준 아홉 번째로 큰 대미 무역흑자국인 만큼 무역흑자 해소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초반에 언급한 LNG 추가 구입 및 투자 협력, 조선업 협력을 바탕으로 협상의 틀을 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일단 미국산 소고기 월령제한과 쌀 저율관세할당 등 비관세장벽에 대한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각) 고율의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쌀·자동차·소고기 등 특정 품목 교역을 한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의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1차 관세 협상을 진행한 일본도 농산물 수입 확대와 미국 수입 자동차의 안전 기준 재검토를 관세 협상에 활용했다.
미국 측이 방위비 분담금을 통상 문제와 합친 ‘패키지 딜’로 제안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집권했다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를 뜯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정부는 방위비 문제의 경우 통상 문제와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할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방위비는 ‘2+2 통상협의에서 얘기할 주제가 아니다”라며 “방위비 분담금은 국회 비준 사안이라는 점도 미국 측에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 중국 제재 동참 압박 전망
이번 협의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 동참 요구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은 고율 관세부과로 중국 기업의 수출 우회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원산지 검증을 강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은 관세청과 관련 조사에 나서고 있다. 전날 관세청은 중국산을 ‘라벨 갈이’를 통해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미국으로 우회 수출한 사례를 적발했는데 여기에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가 함께 조사에 참여했다.
최근 베선트 장관이 중국산 수입을 막기 위해 멕시코·캐나다가 대중국 관세를 높이고, 대신 미국의 관세는 경감받는 ‘북미 요새’를 거론하는 점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측은 북미 3국을 주축으로 구상했던 ‘중국 때리기 연대’를 상호관세 협상에 연루된 70여 개국으로 넓히는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대중 제재에 동참할 경우 수출 타격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에 육박하는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한국 주요 기업의 글로벌 생산 설비 중 15∼20%(지난해말 기준)가 중국에 있을 정도로 공급망 의존도도 높다.
정부는 이번 방문에서 미국의 요구사항을 일단 들어보겠다는 입장이다. 권한대행 체제에서 소고기 추가 개방 등 정치적인 부담이 큰 사안을 섣불리 협의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2+2 회동의 성격도 ‘협상’이 아닌 ‘협의’로 규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2 협의는 상대방의 요구사항이 뭔지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가깝다”며 “(한국 정부가 의제로 준비하지 않은) 어떤 사안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우리가 이번 협상에서 섣불리 카드를 제시하는 것은 자승자박이 될 것”이라며 “권한대행 체제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미 측의 요구사항을 파악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최근 미국 현지 투자 확대와 에너지 수입 확대 등 대미 무역수지 흑자 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