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길 기자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윤석열의 12·3 불법계엄이 던진 커다란 충격 중 하나는 극우 세력의 부상이다. 대통령이 불법적 계엄을 선포해 헌정을 유린하고 그 지지자들이 법원까지 침탈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경악했다. 한국 사회가 극우 파시즘 전 단계에 도달했다는 우려까지 학계 일각에서 나왔다.
그러나 최근 <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생각정원)를 출간한 윤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탄핵 국면에서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라며 “한국 시민사회는 극우적인 주장들을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한국 사회에 극우 파시즘은 언제나 있었다”면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보수가 절연하고 있었던 파시즘적인 주장들이 주류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극우적인 주장들이 시민사회에서 계속 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민주주의 쇠퇴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다. 윤 교수는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10개월 동안 베를린 고등연구원 펠로우로 지내면서 이를 절감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학자·언론인·작가 30여명이 민주주의의 위기 문제에 대해 너무나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윤 교수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을 통제하기 위해 인류가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국가라는 괴물을 다루지 못하면 그 괴물에 잡아먹힐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이상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 걸린 문제다.
윤 교수는 민주주의 없이는 안정과 성장을 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히틀러가 했던 방식으로 경제를 성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어받지 않는 독재자는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국가를 몰락시킨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심지어 인류 사회에 가장 큰 범죄를 일으켰죠.”
윤 교수는 한국 보수주의 세력이 극단적 권위주의·반공주의와 절연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에서 타협의 문화를 정착시킬 수 없다고 본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부정하는 극우로 퇴행한 세력과 타협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극우적 주장과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결단이 아주 중요합니다. 보수 안에서 그런 (극우적) 목소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나오지 않으면 반대편 극단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극우를 밀어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도 된다’는 식의 또다른 극단적 목소리가 나오면서 공론장의 질적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중요한 분수령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극우적 사고가 더는 주류가 될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난다면, 주변부에 있는 극우적 목소리들도 잦아들 겁니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서도 ‘적 아니면 동지’라는 논리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민주적 가치에 동의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문을 더 열어야 합니다. 손해를 좀 본다 싶더라도 열어야 돼요.”
이탈리아는 “멀쩡해 보이는 민주주의 체제라도 그 안에 패거리 정치와 부패, 진영논리가 자리를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탈리아는 경제적·문화적으로는 선진국으로 꼽히지만 정치가 표류하면서 발전이 정체된 국가다. 한국이 이탈리아의 길을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문화 많이 본 기사
“이탈리아는 파시즘의 과거와 확실히 단절하지 못했어요. 한편으로 정치적 견해의 양극화는 너무 심했습니다. 그래서 베를루스코니처럼 함량 미달 정치인이 지도자가 됐죠. 저쪽 진영이 싫어서 (결함에) 눈감아 준 겁니다.”
결국 한국이 이탈리아의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열쇠는 좋은 정치에 있고, 좋은 정치를 이끌어내는 힘은 시민사회에 있다고 윤 교수는 강조했다. 내란과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또 한번 결정적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군부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교과서로만 봤던 20~30대들이 이번 사태를 지켜봤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게 결국에는 한국 민주주의에 큰 자원과 힘이 될 거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