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13일 열린 콘클라베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됐다. 박수갈채 속에서 브라질의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따뜻하게 포옹하며 말했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때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머릿속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가톨릭 수도회인 작은형제회 설립자이자 ‘가난한 자들의 벗’으로 칭송받은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다. 교황직 수락 의사를 밝힌 후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프란치스코’라고 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로 다짐한 대로 낮은 곳에서 힘없는 자들을 위한 삶을 이어갔다. 마지막 투병 중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경북 지역에서 대규모 산불을 겪은 한국 국민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내고, 성 베드로 성당을 깜짝 방문해 신자들을 만났다. 선종 전날인 20일 부활절 미사에서 마지막 강론을 통해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 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촉구하고 인질을 석방해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를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교황의 선종에 전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는 밤늦게까지 수천명이 몰려 교황을 추모했고 각국의 성당에도 조의를 표하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교황의 고국 아르헨티나 정부는 7일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가자지구 기독교인들은 “우리는 매일 우리에게 용감해지는 법, 인내심을 갖고 강해지는 법을 가르쳐준 성인을 잃었다”며 크게 애통해했다.
교황의 떠나는 길 역시 그의 인생처럼 검소하고 소탈했다. 장례는 생전에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라 한 교황 뜻에 따라 진행된다. 3년 전 작성한 유언장에, 교황은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장식 없는 간소한 무덤에 안장해달라고 남겼다. 자신의 관 역시 아연으로 내부만 덧댄 장식 없는 목관을 택했다. 비문도 특별한 장식과 수사 없이 오직 자신의 라틴어 교황명 ‘프란치스코(Franciscus)’만 적으라고 했다. 그의 이름처럼, 낮은 곳에서 살아온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끝까지 살다 간 교황의 명복을 빈다.

22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영성센터 건물 외벽에 전날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걸려 있다. 서울대교구 주교단은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프란치스코 교황 빈소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