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벨 전 국무부 부장관 아산플래넘 기조연설
“조선분야 채널로 다른 분야 확대할 수 있어”
조태열 “대중 관여는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

커트 캠벨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아산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아산플래넘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부장관이 23일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캠벨 전 부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아산플래넘 2025’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 입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투자를 늘리는 게 좋을 것”이라며 “좋은 예가 조선업”이라고 밝혔다.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마지막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지내며 당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미국 외교 초점을 이동하는 ‘아시아 중심 정책(Pivot to Asia)’을 설계한 인물이다.
캠벨 전 부장관은 “미국은 민간·군수 조선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건조 능력이 좋은 한국이 (미국에) 도움을 주면 파트너십이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조선 분야를 협상 채널로 삼아서 다른 분야로 확대하면 방향이 잡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는 오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2+2 통상 협의’를 통해 관세 협상을 진행한다.
캠벨 전 부장관은 미·중 관계를 두고 “양측이 방법을 찾아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며 “의사소통 채널을 열어놔야 잘못된 해석이 위기나 갈등으로 격화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캠벨 전 부장관은 “군사뿐 아니라 경제 측면에서도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외교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관세와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대치하고 있지만 뚜렷한 협상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축사에서 “역내 그 어떤 나라도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미·중 전략경쟁이 제로섬 게임으로 발전하는 상황을 바라는 나라도 없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이어 “그래서 우리의 대중 관여는 여러 측면에서 미국의 이해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중국에 대한 관여는 21세기 강대국 간 전쟁의 방지라는 목표에도 더욱 부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중국과 관계 관리를 통해 역내 및 세계의 평화·안정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견인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아산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아산플래넘 2025’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 질서가 ‘강대국 정치’로 회귀하는 양상에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조 장관은 “역사는 강대국들이 공동선을 외면한 채 자국의 이익만을 노골적으로 집착할 때 전 세계에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저리게 가르쳐 줬다”라고 밝혔다. 조 장관은 이를 교훈 삼아 전후 미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됐으며 “한국은 그 질서의 대표적인 수혜자”라고 했다.
조 장관은 “이런 기존 질서에 균열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라며 ‘탈(脫) 탈냉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의 국제정세는 노골적인 자국 중심주의와 제로섬 논리가 지배했던 전간기(1차 및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의 암울한 시기를 연상케 한다”라며 “이런 현실 속에서 전쟁 방지라는 숭고한 이상이 결코 퇴색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출범할 신정부 역시 ‘탈 탈냉전기’ 질서가 강대국 간의 규합을 통해 형성될 수도 없고, 형성돼서도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소수 강대국들이 경쟁과 타협을 통해 세력권을 조정하는 식의 국제질서가 구축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국제질서 속에서는 한국처럼 세력권이 겹치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있는 국가는 불필요한 분쟁 등에 휘말리면서 피해를 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