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전두환에 이어 2024년 12월3일 현직 대통령이 44년여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판결로, 이것이 불러온 위태로운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이 거리와 광장에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인터넷과 TV를 통해 재판을 지켜보며 애태운 끝에 나온 결과다. 상황은 국면을 바꿔 이어지고 있고, 현실이 정상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이 전체 상황은 형사재판을 통해 검토될 것이고 이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반추하겠지만, 그것과 다소 다른 차원의 의문도 생겨났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과 심정적으로 그에 동조했던 측과 내란에 반대한 측은 서로 답을 얻지 못한 의문을 갖게 됐다. 한쪽은 쿠데타가 왜 실패했는지를, 다른 쪽은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최고 권력자가 현직에 있으면서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대단히 드물다고 한다. 최정예 부대까지 동원해 준비한 친위 쿠데타가 한밤중에 뛰쳐나온 민간인들에게 저지된 상황을 전자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내란에 반대한 대다수 시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최고 권력자가 갑자기 비상계엄까지 선포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의 음주 습관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의 배우자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대통령 본인과 그의 배우자 이외에는 결국 알 수 없을 것이다.
파면된 대통령이 2022년 임기를 시작했을 때, 이미 이후 전개될 정치적 양상에 대해서는 대략적 예상이 가능했다. 재임 중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고까지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언행이 그런 예상을 가능케 했다. 자신의 사회생활 전부를 공무원으로 지냈으면서도 공적인 사고에 미숙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모습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주 드러났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 이후 지난 40여년 동안 한국은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의 재임 기간이 그렇게 축적된 제도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가 진행되는 시간이 되리라 예상됐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본래 의학이나 IT 분야의 용어다. 드물긴 해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취약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시스템에 정상적인 수준 이상의 충격이나 부하를 주는 일이다. 심장 기능을 검사할 때, 온라인 혹은 모바일 게임 서버의 수용력을 검사할 때 사용한다. 나중에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측정하기 위해서도 이 개념이 사용됐다. 생산, 환율 같은 특정 거시경제 변수의 급격한 변동을 가정하고 이런 상황에 대해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안정적일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다.
4월4일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한국 민주주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일단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정지되는 것은 막았지만 시스템이 상당한 수준으로 훼손되는 것까지 막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스트레스 테스트에 뒤이어 훼손된 시스템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 탄력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탄핵심판의 말미에 국회 측 대리인단 장순욱 변호사는 회복 탄력성의 근원적 힘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었고, 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바로잡는 것이 회복 탄력성의 첫 단추임을 말했다. 2500년 전 공자가 정치를 함(爲政)에 있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이름을 바로잡는 것(正名)이라고 한 것을 연상시킨다. 그는 포크 밴드 ‘시인과 촌장’이 1986년 발표한 ‘풍경’의 노랫말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을 말했다. 평범한 시민들의 힘이야말로 헌법을 수호하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아름다운 힘이라는 것을 확인한 넉 달이었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