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https://img.khan.co.kr/news/2025/04/23/l_2025042401000702900071682.jpg)
아침마다 나는 500억개의 유산균이 든 요거트를 먹는다. 달고 맛도 좋다. 창밖으로 봄이 성큼 지나간다. 매화꽃이 피었나 싶더니 어느새 손톱만 한 열매가 초록 잎 뒤로 숨는다. 아마 살구와 앵두 열매도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어린 과일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땅으로는 봄나물이 빈 곳을 채우며 무성하지만, 슬쩍 데친 두릅나무 순처럼 과일과 나물의 봄맛은 쌉싸름할 뿐이다.
우리는 다섯 가지 정도로 세상의 맛을 느낀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그리고 감칠맛이다. 최근에는 지방 맛을 감지하는 또 다른 미각 수용기가 알려지기도 했다. 미각을 담당하는 수용기는 대개 혀에 분포한다. 음식물을 담고 줄곧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소화기관은 항문을 맨 뒤에 포진하고 맛은 물론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 온갖 감각기관을 전면에 배치한 채 먹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파리는 입은 물론 다리에도 맛을 느끼는 수용체를 갖고 있다. 목표물에 착지하자마자 먹을 것인지 아닌지 바로 판단할 수 있게 진화한 것이다. 이에 인간은 살충제에 단맛을 섞어 파리의 감각계를 교란한다.
모든 동물이 다섯 가지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주식으로 삼는 먹잇감인 초식동물이 전혀 달지 않기 때문이다. 씹지 않고 통째로 먹이를 삼키는 바다사자 같은 동물은 아예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환경에 적응한 예외일 뿐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뇌는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 진화했다. 먹을 게 있으면 뭐든 먹어두려는 습성이 진화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달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기쁨을 느끼도록 보상회로가 발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와 달리 쓴맛은 음식에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쓰면 뱉는 것이다. 우리는 미세먼지나 세균도 쓴맛으로 느끼는 것 같다. 공기가 지나는 코와 기도 상피세포에는 쓴맛 수용기가 있어 먼지나 세균을 포획한 점액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 이는 우리 몸에서 늘 벌어지는 생리현상이다. 그렇긴 해도 인간이 쓴맛을 죄다 포기한 것은 아니다. 도토리를 갈고 물을 흘려 쓴맛 물질인 타닌(tannin)을 제거한 뒤 묵을 쑤어 별미로 먹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뿐이랴. 콜라 열매 추출물을 섞고 단맛 나는 물질을 듬뿍 집어넣은 코카콜라는 카페인의 쓴맛을 없앤 음료수이다. 세계대전으로 설탕이 품귀현상을 빚었을 때 콜라에는 합성물질인 사카린이 들어갔다. 설탕보다 약 300배는 달다는 사카린은 인류가 개발한 최초의 합성 감미료이다. 1870년대에 만들어진 사카린은 놀랍게도 석탄을 태웠을 때 나오는 시커먼 콜타르를 재료로 만들어졌다. 진통제인 타이레놀도 콜타르로 만든 물질이니 석탄에서 나왔다고 그저 정색할 일은 아니다.
사카린은 한때 인기 정상에 올랐다 추락한 뒤 다시 살아난 험난한 운명을 겪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가 사랑한’ 사카린은 쥐의 방광에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라 하여 식탁에서 퇴출당했으나 항생제 내성이 있는 세균을 물리칠 수 있는 대체 물질로 금의환향하기도 했다. 이런 놀라운 변신술을 보인 사카린의 맛은 나도 정확히 기억한다. 더운 여름날 바가지에 마름모꼴 사카린 몇알을 탄 우물물의 희한한 단맛을 어찌 잊겠는가. 충치가 생긴 어금니 사이에 사카린 한 알을 물고 호된 통증을 참았던 적도 있었다. 1970년 당시 사카린이 충치균의 준동을 억제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짐작이라도 했을 것인지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파리 다리가 미각을 감지하듯 우리 장과 췌장은 물론 뼈와 지방 조직에도 단맛 수용기가 있다. 하지만 이들 감각은 뇌로 전달되지 않는다. 신경계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 기관은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 이들 수용기는 무슨 일을 할까? 소화기관에서 대사 과정에 참여함은 물론 지방 생성과 뼈 생물학을 조절하리라고 추론한다.
오줌 보관소인 방광에도 단맛 수용기가 있다. 귀한 포도당이 허투루 밖으로 나가지 않게 막는 장치일 것이다. 포도당과 달리 몸에서 대사되지 않은 채로 배설되는 사카린을 먹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평소보다 소변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본능적으로 우리 몸은 사카린을 꺼리는 것 같다.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가 든 콜라를 달고 사는 트럼프의 말을 들어보자. “제로 콜라는 아무 효과가 없다. 그저 배고프게 만들 뿐이다. 이 음료를 즐겨 마시는 날씬한 사람은 없다.” 맞는 말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