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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분법이 아닐진대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세상은 이분법이 아닐진대

바야흐로 대선 시즌이다. 확 짧아진 일정 탓에 대선 경쟁에 나서는 정치인들은 급하게 공약을 만들고 국민에게 홍보하는 중이다. 출사표를 던진 정치인 중 유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공약과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높다. 당내 경선 중인 이 전 대표는 거의 확실하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것이고, 현재까지는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그러니 그의 언행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따져보지 않은 채, 막연히 잘하리라 믿고 인물론-그것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선입견-에 기대어 뽑은 바람에 겪어야 했던 생고생을 잊지 않았다면, 공약을 꼼꼼하게 따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런데 이 전 대표의 정책 발언에 대한 언론의 반응에서 의아한 점이 있다. ‘우클릭’ 논란이다.

이른바 친시장적 정책을 발표하면, 진보와 보수 언론 모두 비판 혹은 기대를 담아 이 전 대표가 우클릭한다는 평가를 내린다.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은 당연하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정책 자체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대신 시장경제 친화적인 정책이면 그냥 우클릭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보는 것이다. 이는 정치인을 진보와 보수 혹은 좌와 우로 나눈 후, 모름지기 진보(또는 좌)라면 분배를, 보수(또는 우)라면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딱히 추구하는 이념이나 신념을 찾기 힘든 정치인이 태반이지만, 어쨌든 정치인을 소속 정당이나 평소 행보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구분 짓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진보는 분배, 보수는 성장이라는 이분법은 타당하지 않다.

복지와 친기업 정책은 함께 가야

세상이 복잡한 만큼 국정운영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의 삶이 편안하려면 국방·치안·경제·교육·복지·의료·환경 등 국정 제반 분야가 잘 굴러가야 한다.

이는 대통령과 여당이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 진보 측이라고 성장을 도외시하거나 보수 측이라고 복지를 백안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방·치안 등의 체제 유지 기능은 기본이고, 견실한 성장과 공정한 분배는 둘 다 함께 추구해야 하는 목표다.

이런 내 지적에 반론이 있을 법하다. ‘누가 그걸 모르느냐, 다만 똑같이 성장을 추구하더라도 보수와 진보는 방식이 다르기 마련인데, 이 전 대표가 하겠다는 것은 친시장적인 보수의 방식이니 우클릭이라는 것이다’란 반론이다. 이를테면 진보의 성장 정책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소득주도성장 같은 것이고, 보수의 성장 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대단한 착각이다. 친시장 정책은 보수만의 것이 전혀 아니다. 우리 경제 체제는 시장경제이니 경제가 성장하려면 시장 기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도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진보가 친시장 정책 펼치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여겨진다면 스웨덴 사례를 보자.

스웨덴은 오랫동안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불렸으며, 여전히 현존하는 복지국가 중 모범이다. 그런데 스웨덴은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것으로도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툰다.

‘IMD 국가 경쟁력 평가’라는 게 있다. 국가 경쟁력 순위를 매기고 발표하는 기관은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중 가장 공신력이 높은 축에 든다. 이에 따르면 2024년 스웨덴의 국가 경쟁력은 67개국 중 6위이다. 세부 항목별로 보면 기업 규제가 6위, 기업 생산성·효율성이 3위, (유연한) 노동시장이 4위다. 이에 비해 우리 국가 경쟁력은 20위이다. 그런데 기업 규제는 47위, 기업 생산성·효율성은 33위, 노동시장은 31위이다. 사회민주주의 체제인 스웨덴이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우리보다 훨씬 기업 친화적이다! 그뿐만 아니다. 스웨덴은 재정이 건전하기로도 유명하다. 스웨덴의 국가채무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분의 1 이하로서 선진국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성장 정책에 ‘우클릭 프레임’ 부당

모범적인 복지국가면서 동시에 친기업적인 경제 체제라는 게 신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스웨덴 입장에서는 자연스럽다. 스웨덴은 우리처럼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제조업 강국이다. 수출로 먹고사니 기업 경쟁력이 높아야 한다. 대외 여건에 민감한 개방경제 체제에서 산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려면 튼튼한 사회안전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니 복지와 친기업 정책이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전체 파이가 커야 분배도 넉넉하게 이뤄질 수 있는 법인데, 파이를 키우려면 시장이 활발하게 작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성장이 원활할수록 더 두꺼운 복지가 가능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진보가 성장에 더 절실할 법하다.

성장을 중시한다는 데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다. 그보다는 불평등을 보는 관점에서 둘의 정체성이 구별된다. 불평등의 원인으로 개인과 사회구조 중 어디에 방점을 두는가, 무슨 수단으로 어떤 불평등을 얼마나 완화하려는가에서 둘의 입장은 다르다.

정리하면, 적어도 성장 정책을 두고 우클릭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게다가 일단 프레임에 갇히면 해당 정책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니 정당한 평가를 막으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프레임 씌우기는 이제 그만하자.

그보다는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이 제안하는 정책별로 비용과 편익, 효과와 부작용을 제대로 따지자. 나는 ‘K엔비디아’나 ‘한국형 팔란티어’를 두고 이념 논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대신 무슨 재원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그 효과와 부작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성장 정책이라는 큰 틀 내에서 이 정책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꼼꼼히 따지고 싶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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