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박근혜 판례 들며 ‘포괄적 대가’ 주장
딸 부부 공모 사실 입증돼야 뇌물 혐의 인정
검찰 “문 전 대통령이 진술 거부해 기소 결정”
문재인 측 “답변서 준비 중 기소…반론권 침해”
검찰이 2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상직 전 의원으로부터 약 2억1700만원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다. 문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재판에선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 전 의원이 본인이 지배하는 해외법인인 타이이스타젯에 문 전 대통령 전 사위를 채용해 지급한 급여 등을 문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볼 수 있을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전주지검은 애초 문 전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 적용을 검토했으나 ‘뇌물죄’로 기소했다. 제3자 뇌물죄를 입증하는 것이 뇌물죄보다 어렵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어야 하는데 제3자 뇌물죄는 추가로 ‘부정한 청탁’까지 입증해야 한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문 전 대통령에게 인사 등을 청탁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배포한 A4 10쪽 분량 수사 결과 보도자료엔 문 전 대통령이 이 전 의원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내용이 없다.
대신 검찰은 문 전 대통령과 딸 부부를 뇌물죄 공범으로 간주하면서 그 근거로 ‘딸과 전 사위가 단순한 뇌물 수혜자를 넘어 능동적 행위를 하면서 뇌물수수 범행 완성에 필요한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들었다. 딸 부부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통해 이 전 의원이 준비한 태국 현지 정보 등을 전달받아 태국 이주를 직접 결정하는 등 범죄 성립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무원과 공무원이 아닌 제3자가 사전에 일치된 의사로 범행을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라 제3자가 뇌물을 수수한 경우 모두에게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내세웠다. 문 전 대통령과 딸 부부의 공모 사실이 입증돼야 문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인정될 수 있어 재판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앞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 판례를 들어 대통령 뇌물 사건에서 직무관련성이 폭넓게 인정된다고 했다. “대통령의 광범위한 직무권한의 특성에 비춰 이익제공자와 대통령 사이의 구체적 현안을 요구하지 않는 포괄적 대가관계가 인정”되기에 사건의 본질은 ‘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포괄적 권한 행사를 통한 정치적·경제적 혜택을 기대한 이 전 의원으로부터 문 전 대통령 자녀 부부의 태국 이주를 지원하는 특혜를 받은 것’이란 주장이다. 이른바 ‘포괄적 뇌물죄’라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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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검찰은 지금까지 수년 동안 사위의 봉급 등을 제3자 뇌물죄로 의율했지만,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할 만한 아무런 단서를 잡지 못했다”며 “그러자 기소 단계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딸, 사위와 함께 사위의 급여를 뇌물로 받기 위해 외국 기업 취업을 공모했다는 허위의 무리한 기소를 했다”고 밝혔다. 또 “문 전 대통령은 사위의 취업을 사전에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취업을 부탁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며 이 전 의원의 2018년 3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임명과 문 전 대통령 사위의 2018년 8월 타이이스타젯 취업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은 것을 두고 반론권을 침해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검찰은 지난 2월부터 두 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문 전 대통령 측이 응하지 않았고, 이후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 질의서를 보냈지만 한 달 이상 답변을 보내오지 않아 “사실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 전 대통령 측은 “이달 말까지 답변서를 제출하겠다고 검찰에 알렸고 실제 작성 중이었다”며 “최소한 사실관계 확인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이 짜 맞춰 놓은 가공의 사실에 기반을 둔 위법한 ‘벼락 기소’를 했다”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