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이 ‘트럼프발 관세’ 폐지를 위한 협의를 오는 7월8일까지 마치기로 한 가운데 양국이 합의한 의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측이 밝힌 한·미 간 협의 분야는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이다. 이 중 비관세 조치와 관련해 미국 측은 한국의 디지털 분야 무역장벽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안보 분야에선 ‘중국 고립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투자협력 분야에선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 압박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속도전을 강조해 온 미국으로부터 ‘7월 패키지(7월8일 이전까지 타결)’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이번 만남의 성과로 내세우고 있지만, 각 사안에서 전면화될 미국 압박을 어떻게 이겨낼지가 과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진행한 미국과의 2+2 통상협의 결과 브리핑에 따르면, 한·미 양국이 합의한 논의 대상은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이다. 양국은 구체적 협의를 위해 복수의 작업반을 구성하기로 했다. 환율정책은 한국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 간, 나머지 분야는 한국 산업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 간 실무협의가 진행된다.
관세·비관세 분야의 경우 미국은 그간 문제삼아온 한국의 무역장벽에 대해 구체적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양국 간 협의 범위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동안 (미국과의 협의에서) 디지털 분야의 여러 이슈가 제기된 게 많다”며 ‘디지털 분야’를 대표적으로 언급했다.
미국은 디지털 분야의 비관세 장벽으로 구글, 넷플릭스 등 콘텐츠 제공 사업자(CP)가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 지급해야 하는 ‘망 사용료’, 국내 공공 클라우드 분야에 대한 해외 사업자 접근 제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제한, 플랫폼 독과점을 규제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법 논의 등을 지목해 왔다.
관세·비관세 협의 테이블에서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산 자동차 판매 확대 방안을 요구받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상 배출가스 관련 부품(ERC) 규제가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한국 시장 진출 ‘장애물’이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경제안보 분야에선 ‘중국 고립’ 동참 요구를 받게 될지가 관심이다. 앞서 지난 15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협상을 벌이는 국가들에게 관세 경감 조건으로 중국과의 거래 제한 약속을 받아내려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의 제3국 우회수출과 함께 중국이 제3국을 생산기지로 삼는 것을 막고, 제3국 산업에 중국산 공산품이 침투되는 것도 막도록 한다는 게 미국의 ‘중국 고립 연대’ 구상이다.
경제안보 분야 논의 내용에 대해 안 장관은 이날 “기술 협의(실무 협의)가 시작돼야 어떤 내용들을 포함할 수 있을지 결정할 수 있어서 예단해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그러면서 중국의 한국 우회수출에 대해서는 “철강의 경우 원산지가 다 나와 있어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게 하나도 없다고 데이터로 다 나온다”면서 “한·중 간 교역 모드가 완전히 바뀌어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달리 지금은 (한·중 교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고 반덤핑 관세율은 두 자릿수가 넘는 상황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USTR과 상무부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자협력 분야에선 미국의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한·미 2+2 통상협의가 이뤄진 날 뉴욕타임스는 백악관의 ‘에너지 지배 위원회’가 한국, 일본 등에 수주 내에 알래스카 LNG 구매 계획을 밝힐 것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는 6월2일 알래스카에서 개최하는 고위급 회담에서 한국, 일본 등이 참여토록 해 투자의향서(LOI)에 서명하게 만들려 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안 장관은 “알래스카 LNG 문제는 (한국 측의) 현지 실사를 통해 정확하게 파악해야 될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다”면서 “실사단이 다녀온 이후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실사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6월2일 행사(알래스카 고위급 회담)는 알고 있지만 LOI와 관련한 얘기는 (24일의 2+2 통상협의에서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래스카 LNG는 우리(한국)만 해가지고는 사업의 타당성을 만들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일본,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의 주요 LNG 수요 국가들이 협의체 같은 것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은 (한국 측에서) 그동안 계속 해 왔다. (2+2 통상 협의에서는) 그런 정도의 논의가 있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