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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3일(현지시간) ,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거한 후 이탈리아 로마의 성 마리아 마조레 성당 밖에서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묵주 기도에 참석하고 있다.

‘성학대 은폐’ 의혹 추기경, 교황 ‘장례식 주관 사제’로 임명한 교황청

입력 2025.04.25 16:00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성직자들의 ‘성 학대 스캔들’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는 추기경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 사제로 지정했다. 성 학대 피해자 단체들은 그를 장례 사제로 임명한 교황청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24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대주교 자리에서 은퇴한 로저 마호니 추기경(89)이 장례식에서 교황 시신이 담긴 관을 닫는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2025년 4월 23일(현지시간) ,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거한 후 이탈리아 로마의 성 마리아 마조레 성당 밖에서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묵주 기도에 참석하고 있다.

2025년 4월 23일(현지시간) ,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거한 후 이탈리아 로마의 성 마리아 마조레 성당 밖에서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묵주 기도에 참석하고 있다.

마호니 추기경은 오는 25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진행될 관 봉인과 이튿날 이탈리아 로마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으로의 유해 안치 의식을 주관하는 추기경 9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명단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단 단장, 케빈 패렐 교황청 궁무처장,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 등 현역 거물급 추기경이 포함됐다.

CNN은 1985년부터 2011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대교구를 이끈 마호니 추기경이 1980년대에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은 사제들을 해임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마호니 추기경이 대교구장을 지내는 동안 수사기관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호니 추기경도 성 학대 스캔들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진 이후 그는 2011년 대주교직에서 은퇴했다.

미국 시민들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은퇴를 선언한 2013년 당시 마호니 추기경에게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청원을 하기도 했다. 마호니 추기경은 80세 이상 교황 선출권·피선거권 금지 규정 때문에 이번 콘클라베에는 참석할 수 없다.


카톨릭 성직자에게 성적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2007년 7월 16일(현지시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법원에서 다른 피해자들의 얼굴이 그려진 퀼트 이불을 들고 있다. 게티이미지

카톨릭 성직자에게 성적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2007년 7월 16일(현지시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법원에서 다른 피해자들의 얼굴이 그려진 퀼트 이불을 들고 있다. 게티이미지


로스앤젤레스 대교구 내 성 학대 사건은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보고됐다. 성직자들은 아동을 포함한 신자를 강간하거나, 성추행을 일삼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로스앤젤레스 대교구는 학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2007년 508명의 피해자에게 6억6000달러의 합의금을 냈다. 지난해에는 피해 생존자 1353명에게 8억8000만달러(약 1조2614억원)의 추가 합의금을 주기로 했다.

앞서 마호니 추기경은 자신이 성 학대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과거에는 가톨릭교회가 성 학대를 저지른 사제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를 제대로 몰랐던 시점이었다면서 범법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교황청이 마호니 추기경을 장례 사제로 임명하자 가톨릭 성 학대 피해자 단체들은 반발했다.

미국의 로저 마호니 추기경이 2013년 3월6일(현지시간)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로저 마호니 추기경이 2013년 3월6일(현지시간)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성 학대 피해자 모임인 ‘사제 학대 생존자 네트워크’의 데이비드 클로헤시 전 대표는 마호니 추기경에게 장례식 주요 역할을 부여한 것은 “(성 학대 부실 대처에) 공모한 주교들에게 ‘그들이 동료들에 의해 여전히 보호받고 존경받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성 학대 사건을 추적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비숍어카운터빌리티 소속 앤 배럿도일은 “그가 교황을 위한 공개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이렇게 되도록 허용한 추기경단 역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태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마호니 추기경이 장례식에 올 수 있는 사제 중 가장 연장자라고 CNN에 해명했다.

한편 비위 혐의로 1심 유죄판결을 받은 추기경도 콘클라베에 참석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은 교황청 국무원 국무장관을 지내는 동안 영국 런던의 부동산 매매 비리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2023년 바티칸 법원에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추기경 지위와 칭호는 유지하고 있지만 예우와 권리 행사는 중단됐다.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 ‘홀리 시’에는 그에게 교황 선거권이 없다고 적혀있다. 베추 추기경의 2심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 윤기은 기자 energyeu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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