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미 재무부, 조만간 환율정책 실무협의
원화 절상 현실화되면 수출 기업 타격 불가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두번째)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 부총리 오른쪽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기획재정부 제공
한·미 양국이 조만간 환율에 대한 실무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미국 측이 특정한 환율 목표를 요구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협의 여파로 원화 가치가 높아질 경우 수출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번 협상이 ‘패키지 딜’로 진행되는 만큼 미국이 다른 분야에서 한국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환율을 활용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미국과의 첫 ‘2+2 통상협의’ 뒤 브리핑에서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4개 분야가 향후 중점 논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은 이번 협의에서 한국이 환율조작을 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진 않았지만 환율을 의제로 삼자고 제안했다. 최 부총리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먼저 환율 부분은 재무부 간 별도 논의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베선트 장관 제안에 따라 한국 기재부와 미 재무부는 한국의 환율 정책을 별도로 논의하는 데 합의했다.
환율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꼽은 대표적인 ‘비관세 부정행위’다. 무역상대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춘 뒤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 주장이다. 한국에 고율관세를 부과한다 해도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관세 효과도 약해진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1월 1년 만에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하면서 “한국 정부는 원화의 절하를 제한하려고 시장에 개입해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90억달러(국내총생산의 0.5%)를 순매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환율 개입을 환율 시장의 상태가 무질서한 예외적인 상황으로만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향후 환율정책 협의 결과가 원화 가치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수입 물가는 안정될 수 있지만 수출기업 경영난이 가중될 수 있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기업이 달러로 받은 수출대금을 원화로 환전할 때 손에 쥐는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이미 수출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수출은 화학제품, 기계 및 장비 등이 줄어 전분기 대비 1.1% 감소했다. 한·미 간 협상 결과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지만 지금보다 관세율이 더 높아질 경우 수출 부진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미국이 협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환율 목표를 제시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미국은 일본 엔화 약세에 불만을 제기해왔지만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재무장관 회담에서 미국 측의 환율 목표 관련 요구는 없었다고 일본 측이 밝혔다. 베선트 장관도 지난 23일 일본과의 협상에서 구체적 환율 목표가 있는지에 대해 “절대적인 환율 목표는 없다”며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주요 7개국(G7)이 합의한 것을 일본이 준수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미 측에서는 원화 절상을 원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과거와 달리 외환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한다 해도 인위적으로 환율을 움직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