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에게 축복기도를 해 기독교 대한감리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동환 목사의 총회재판위원회 판결 무효 확인 청구 소송 항소심이 기각된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 앞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동등하며 특별합니다.”
“우리는 혐오가 아닌 사랑이 가득한 세계를 꿈꿉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가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건넨 축복기도 일부다. 감리회는 이 목사가 동성애 동조 행위를 금지하는 ‘교리와 장정’ 3조 8항을 어겼다며 ‘정직 2년’ 징계를 내렸고, 이후 출교 조치를 했다. 이 목사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총 8명의 목사가 쿼어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징계 명단에 올랐다. 이 중 일부는 종교 재판에서 나아가 사회 법정에도 서고 있다.
27일까지 사법부가 이들에 관해 판단한 사례는 총 5건이다. 재판부마다 결론은 엇갈렸다. 몇몇 재판부는 특정 종교가 성소수자 차별을 용인해선 안 된다고 봤다. 반대로 교리에 담긴 내용은 존중돼야 한다며 반동성애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재판부도 있었다.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사법부마저 위헌적 행위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용’ 재판부 “반동성애, 보편적 규범 아냐”
“감리회 내 위법성 평가도 불명확”
지난해 7월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이 목사에 대한 출교 효력을 정지해야 한다는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 목사에 대해 내려진 첫 사법부 판단이었다.
결정문에는 동성애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다는 점이 강조됐다. 재판부는 “동성애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동성애를 존중하는 취지로 판단한 판례들을 나열하기도 했다. 국가위원회법이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헌법이 모든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도 명시했다.
지난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 집례 후 출교된 남재영 목사도 지난 3월 법원의 제동으로 징계 효력이 중단됐다. 대전지법 민사21부는 감리회 안팎에서 ‘동성애 동조’의 위법성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남 목사와 함께 축복식을 집례한 목사는 징계 대상이 됐다가 서울남연회 심사위원회에서 불기소됐다. 어느 지역 연회에서 징계 여부를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교리 해석에 떠넘긴 ‘각하·기각’ 재판부
“동성애 처벌 무효는 교단 존립 위태롭게 해”
반면 이 목사는 ‘정직 2년’ 징계를 무효로 해달라는 본안 소송에서는 1심과 항소심 모두 패소했다. 교리에 대해선 법원이 직접적인 잘잘못을 가를 수 없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지난해 8월 1심은 “교리는 법률이 아닌 해석의 문제”라며 징계의 위법성을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리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을 무효로 하는 것은 “교단의 존립 목적을 위태롭게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감리회 내에서 성소수자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심하기 때문에 교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같이 밝혔다.
항소심에서는 1심의 각하 결정보다 한 발 나아가 ‘정직 2년’ 징계에 대해 법원이 위법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봤지만,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는 ‘교리’에 대해선 심사할 수 없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설시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 목사 측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퀴어축제에서 축복기도를 했다면 동성애 동조 의미가 담긴 것이고, 이것이 교리에 어긋난다면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종교의 자유’에 포장된 부당 징계”
“논쟁적이라고 법적 논의마저 실종돼선 안 돼”
‘성소수자 축복’를 해악으로 여겨 교단에서 추방하는 문화가 ‘종교적 자유’라는 이유로 사법적 면죄부를 받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살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소수자와 관련해 사회적 인식과 판례가 모두 변화하고 있는데, 정작 ‘종교적 징계’는 성역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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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 측 대리인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교단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반동성애에 손쉽게 손을 들어준다면 논의 테이블은 없어진다”고 말했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도 “종교의 자율성은 보장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종교적 행위는 제한돼야 하는 게 마땅하다”며 “예민한 문제라는 이유로 평등에 반하는 사안에 대한 법적 논의가 실종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이 목사 측은 상고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논쟁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릴 수 있지만, 대법원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혼란을 회피하지 말고 명확히 정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