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원 사주’ 의혹을 받아온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25일 사의를 표명했다. “일신상의 사유”라고 하지만 속내가 뻔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류 위원장이 연루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신고 건을 최근 감사원으로 이첩하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본 것 아닌가.
류 위원장은 2023년 9월 가족·지인을 동원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등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겨냥해 민원을 넣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방심위 직원이 권익위에 신고하면서 조사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제보자를 보호해야 할 권익위와 경찰은 류 위원장 봐주기로 일관했다. 권익위는 사건을 방심위가 ‘셀프 조사’를 하도록 했고, 지난 2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결론을 냈다. 그사이 류 위원장은 보란 듯이 연임에 성공한 반면, 신고자들은 개인정보를 유출한 ‘범죄자’가 됐다. 류 위원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시나리오였던 셈이다.
이대로 덮일 줄 알았던 사건을 되살려낸 건 방심위 간부의 폭로였다. 지난달 초 국회에서 한 간부가 류 위원장 동생의 민원 접수 사실을 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처음엔 보고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양심고백을 한 것이다. 류 위원장의 거짓말을 뒤엎는 결정타였다. 그는 “(거짓 증언으로) 양심의 가책과 심적 고통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류 위원장에 맞서 싸우는 동료들을 보며 거짓을 바로잡을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방송 뉴스·프로그램을 심의·징계하는 방심위는 류 위원장 임기 동안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을 보도한 방송사들에 법정 제재를 내리는 등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을 위한 돌격대 역할을 자임했다. 그나마 방심위를 지켜낸 건 직원들이었다.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김준희 지부장은 “(류희림 사퇴를) ‘도주’로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류 위원장이 야반도주하듯 사표를 던진다고 끝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공정성과 독립성이 생명인 방심위를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망가뜨린 그의 전횡에 법적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혹여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에서 다른 인사로 교체하는 ‘알박기’를 노린 것이라면, 뜻을 접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