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누적]우리가 음악을 듣는 이유](https://img.khan.co.kr/news/2025/04/27/khan_R5ccl1.jpg)
수많은 음악 관련 실험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시는 이것이다. 몇몇 과학자가 하나의 상황에 두 가지 조건을 설정하고 반응을 기록했다. 동일한 상황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다른 조건은 음악이 흐르는 경우와 흐르지 않은 경우였다. 반복 실험을 거친 결과는 이렇다. 음악이 흐르는 상황에서 인간은 타인에게 더욱 친절해진다.
지난주 콜드플레이의 공연(사진)이 열렸다. 사랑과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가 아름다운 멜로디와 연주에 실려 공연장 전체를 수놓았다. 수만 관객이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옐로(Yellow)’ ‘픽스 유(Fix You)’ 등을 합창하는 풍경은 과연 장관이었다. 그렇게, 콜드플레이의 라이브는 위 실험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공간처럼 보였다. 나도 안다. 누구에게는 이런 유의 감상이 순진하게 들릴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이 생각을 했다. ‘이런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혐오의 메시지를 쏟아낼 수 있을까.’ 집으로 가는 길에 스마트폰을 켰다. 건대 앞 거리에서 벌어진 혐중 시위에 대한 뉴스가 보였다.
나는 우리가 문학과 철학과 음악과 영화를 읽고 보고 듣고 공부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오직 이분법으로만 재단하는 절대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더 나아가 이념을 떠나 인간의 개별성을 이해하는 것. 소통의 도구로 출발한 소셜미디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편견을 그저 강화한다.
위 실험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악마화된 적’을 상정하지 않고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이라는 건 그 자체로 비극일 뿐이다. 소설가 필립 로스의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정체성의 딱지는 사람이 실제로 삶을 겪는 방식과 아무 관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