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울릉도 토벌대장을 기리는 기이한 역사관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울릉도 토벌대장을 기리는 기이한 역사관

조선시대 내내 거주 금지됐던 섬
가혹한 수탈에 백성들 숨어들어
이들 잡아들여 형벌 내린 관리가
되레 역사전시관 주인공 자리에

울릉도는 조선시대 내내 백성의 거주가 금지됐다. 거주가 허가된 것은 1883년이다. 그전까지 울릉도에 사는 것은 불법이었다. 조정에선 수시로 관리를 보내 울릉도를 수색하고 숨어 사는 이들을 잡아들였다. 이 관리를 수토사(搜討使)라 했고, 안무사(安撫使)도 같은 역할이었다.

태종 16년(1416) 9월2일 임금은 삼척 사람 김인우(金麟雨)를 무릉(武陵) 등지 안무사로 삼았다. 무릉은 울릉도다. 김인우가 아뢰었다.

“무릉도가 멀리 바다 가운데에 있어 사람이 서로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역(軍役)을 피하는 자가 혹 도망하여 들어갑니다. 만일 이 섬에 주접(住接)하는 사람이 많으면 왜적이 끝내는 반드시 들어와 도둑질하여, 이로 인하여 강원도를 침노할 것입니다.”

주접이란 머물러 산다는 뜻이다. 태종 16년, 울릉도 안무사로 임명된 김인우는 전함 두 척을 이끌고 울릉도 태하 황토구미로 들어가 ‘머물러 사는’ 사람들을 샅샅이 잡아들여 육지로 보냈다. 이를 쇄환(刷還) 정책이라 했다.

조정에서 울릉도 거주를 금지한 것은 백성들이 살게 되면 왜구의 근거지가 되거나 왜구와 결탁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륙의 백성들은 가혹한 수탈과 부역, 군역 등을 피해 섬으로 숨어들었다.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다. 울릉도에 숨어 살다가 붙잡힌 백성들은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김안(金安)이 수모(首謀)가 되어서 무릉도(茂陵島)로 도망해 들어갔사오니, 율이 마땅히 교형에 처하는 데에 해당하옵고, 그 밖의 종범(從犯)은 모두 경성(鏡城)으로 옮길 것을 청하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 11월25일)

울릉도에 숨어 살다가 수토사나 안무사에게 잡히면 주동자는 사형, 나머지는 전국 관아의 관노비로 보내졌다. 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중죄인이 되던 시대였다. 그래도 뭍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은 자꾸자꾸 섬으로 숨어들었다.

조선 초에는 많은 섬에서 백성들의 거주가 금지됐고 대신 국영 목장이나 수군 기지로 활용됐다. 고려 말 삼별초의 난 때 수많은 섬이 가담했다. 그 이후 섬들은 반역향으로 낙인찍혀 진도와 거제도, 흑산도 등의 백성이 모두 섬에서 쫓겨났고 그것이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 섬 거주 금지 정책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대부분 풀렸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왕실의 재정을 섬 개간을 통한 세수 확보로 채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울릉도, 욕지도, 금오도처럼 왜와 가까운 섬들은 19세기 후반까지도 거주가 금지됐다.

수토사와 안무사가 드나들었던 울릉도 태하마을에는 성하신당이 있다. 김인우 안무사가 토벌을 완료하고 섬을 떠나면서 항해의 안전을 위해 해신에게 제물로 바쳤다는 동남동녀를 모신 신전이다.

섬에 숨어 살다 죄 없이 죽어간 아이들의 비극이 서려 있는 마을 한가운데에는 수토역사전시관이 있다. 안무사, 수토사들과 쇄환 정책의 역사를 아카이빙한 박물관이다. 수토역사전시관을 둘러보면 섬의 역사는 여전히 섬사람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관의 수탈을 피해, 또 먹고살기 위해 섬으로 숨어 들어가 살던 사람들을 잡아들여 형벌을 받게 한 이들이 수토사, 안무사들이다. 울릉도 백성을 잡아들이던 토벌대장들이다.

게다가 울릉도를, 독도를 지키겠다고 일본까지 가서 막부로부터 울릉도, 독도가 우리 땅이란 문서를 받아내고 돌아온 안용복에게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유배형을 내린 나라가 조선이다.

그러니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것은 왕조나 수토사들이 아니라 전라좌수영의 노꾼 출신 안용복과 죽음을 무릅쓰고 울릉도로 들어가 산밭을 일구고 해산물을 채취해 먹고살았던 백성들이다. 그런데 이 백성들을 잡아들인 토벌대장을 기리는 역사관이라니! 참으로 기이한 역사관이 아닌가.

울릉도 개척령으로 1883년 7월16일 처음 입도한 공식 개척민은 16가구 54명이었고 이미 살고 있던 선주민은 141명이었다. 지금 울릉도 사람들은 이들의 후예다. 그런데 울릉도 토벌대장을 기리는 역사관이 가당키나 한가?

울릉도의 주인공은 수토사들이 아니다. 백성들이다. 수토역사전시관은 울릉도 주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수토역사전시관은 수토사가 아니라 울릉도를 지켜낸 백성들을 기리는 역사관으로 바뀌어야 마땅하다.

[강제윤의 섬]울릉도 토벌대장을 기리는 기이한 역사관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