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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타월

[詩想과 세상]무한 타월
옥상에 올라가 수건을 걷었다. 수건은 참 많은 날을 기억하는군. 이건 돌잔치, 저건 9지역 축구 대회, 어느 날은 서울남부교도소 방문 기념일. 돌상 앞에 앉은 내가 지폐 대신 국수를 쥐고, 오빠가 기세 좋게 찬 공이 골대 밖으로 튕겨 나가고, 푸른 수의를 입은 아빠가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날. 수건을 나눠 주며 몰래 한숨을 쉰 엄마가 있다. 수건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오빠가 있다. 비린내가 물씬 나는 수건에 얼굴을 묻고 비는 엄마가 있다. 어쩌다 이 많은 수건이 내게 왔을까. 나는 마른 수건을 개며 칸을 채웠다. 수건을 작게 접는 동안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무언가 쥐여 주었다. 하얀 소창 수건에 ‘축 고희’라고 적혀 있다. 내 것이라고 했다.

이젠 다 접은 것 같아. 방문을 열고 나갔다. 아무것도 안 보이게 눈부신데 거기부터는 내가 모르는 곳. 그리고 이 만화는 여기서 끝난다. 김보나(1991)


수건은 매일 젖거나 마르면서 우리의 피곤한 얼굴을 닦아준다. 시인은 옥상에서 수건을 걷다가 “수건은 참 많은 날을 기억하는군”이라고 중얼거린다. 수많은 날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돌잔치, 축구 대회, 결혼식, 개소식 등 온갖 기념일들을 수건은 기억하고 있다. 수건은 안다. 누가 아침을 맞으며 잠이 묻은 얼굴을 힘겹게 닦아내는지. 누가 지금 사랑에 빠져 울고 있는지, 누가 아이를 낳았는지, 누가 죽었는지. 수건은 축축한 생의 물기들을 닦아주며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물을 많이 먹은 수건처럼 무거운 기억도 지나간다. “푸른 수의를 입은 아빠가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엄마는 “수건을 나눠 주며 몰래 한숨”을 쉬다가, “수건에 얼굴을 묻고” 빌기도 한다.

어느 날은 누군가 수건을 접는 나의 손에 “축 고희”라고 적힌 “하얀 소창”을 쥐여 준다. 수건을 접는 동안 내 생이 빠르게 지나간 것일까. 수건을 다 접고 문을 열고 나서자 “거기부터는 내가 모르는 곳”, 무한한 생이 반복되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오늘도 우리의 젖은 얼굴을 닦아줄 수건은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계속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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