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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시민운동가·지자체장…차곡차곡 다져온 대권 꿈

이재명은 누구인가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높은 공약 이행률로 행정가 이미지
두번째 경선 때 불거진 대장동 이슈 탓 대선 0.73%P 차 고배
12·3 불법계엄 해제 역할…비주류 이미지 벗고 2번째 도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61)는 12·3 불법계엄 사태 후 치러지는 6·3 대선에 출마하며 “겨울이 깊었던 만큼 봄은 더 따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발간한 회고록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는 “내 인생은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고 적었다. 소년공과 시민운동가를 거쳐 경기지사 등을 맡으면서도 대체로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을 거듭해온 그가 약점을 극복하고 국정운영 최고책임자로 설지 38일 뒤 결정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978년 소년공으로 근무하던 대양실업 사옥 앞에서 찍은 사진. 이곳에서 프레스에 손목이 눌리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978년 소년공으로 근무하던 대양실업 사옥 앞에서 찍은 사진. 이곳에서 프레스에 손목이 눌리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이 후보의 정치인생은 1989년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면서 시작됐다. 성남시장과 분당갑 국회의원 도전에 실패한 뒤 2010년 성남시장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3년 만에 부채 4572억원을 갚았다.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 뒤에는 청년 배당, 중학생 무상교복 지원을 현실화했다. SNS도 적극 활용했다. 이때 결성된 지지자 모임 ‘손가락 혁명군’은 이 후보의 핵심 지지 세력이 됐다.

중앙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6년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성남시 등 경기도 6개 지방자치단체의 세입 5000억원을 다른 지자체에 배분하기로 하자 11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해 10월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제도권 정치인으론 처음으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하야를 공개 주장했다. 그 기세로 2017년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지만 문재인, 안희정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이 후보가 1986년 중앙대학교 졸업식에서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법학과 장학생으로 대학 생활을 한 그는 졸업한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 후보가 1986년 중앙대학교 졸업식에서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법학과 장학생으로 대학 생활을 한 그는 졸업한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경기지사 시절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결단력 있는 행정가 이미지를 굳혔다. 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고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시설을 강제 봉쇄했다. 90%대의 높은 공약 이행률 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2021년 민주당 20대 대선 경선에 나서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만 해도 비주류 이미지가 강해 경선은 쉽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후보와의 맞대결은 상처를 남겼다. 경선에서 불거진 대장동 이슈는 두고두고 악재가 됐다. ‘0선’ 대선 후보들끼리 붙은 본선도 녹록지 않았다. 이 후보 핵심 측근은 “대장동 늪에 빠졌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말했다. 20대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패하며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이 후보가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당선이 확정되자 선거사무소에서 부인 김혜경씨와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후보가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당선이 확정되자 선거사무소에서 부인 김혜경씨와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선 패배 두 달 만인 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다시 일어섰다. 그해 8월 민주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22대 총선에서 친이재명(친명)계 인사가 대거 원내에 진입하면서 당을 확실히 틀어쥐었다. 이 후보 체제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 강력한 비토권을 행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4월 22대 총선에서 압승했고, 그해 8월 대표 연임에 성공했다.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발의 등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사법 리스크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지난해 11월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해외 출장 기간 중 골프를 하지 않았다는 발언,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 변경 특혜가 국토교통부 압박으로 이뤄졌다는 취지의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대선 가도에 날개를 달았다.

이 후보가 2024년 1월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왼쪽 목 부위를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가 2024년 1월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왼쪽 목 부위를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12·3 불법계엄 이후 당내에선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후보는 당시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도록 소속 의원들을 본회의장으로 불러 모았다. 국회 이동 중 SNS 라이브를 하면서 시민들을 국회 앞으로 모이게 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후보는 지난 10일 21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위대한 대한국민의 훌륭한 도구, 최고의 도구 이재명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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