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청송감호소 3년여 구금
국가 상대 손배소 “2억원 배상” 확정
진실화해위 ‘진상규명 결정’ 없었지만
대법원에서도 “소멸시효 문제없다”

1994년 11월10일 민자당사 앞에서 열린 ‘삼청교육대 진상규명 및 손해배상 촉구대회’에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인 1980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들이 최근 대법원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잇달아 인정받았다. 해당 사건을 대리한 변호인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대법원이 삼청교육자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 배상 책임을 확정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삼청교육대 피해자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 측 상고를 지난 17일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사건에 대한 별도 심리를 하지 않고 원심 판단을 확정하는 판결이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는 4만여명에 달한다. A씨는 1980년 8월10일 경찰에 의해 삼청교육대로 넘겨진 뒤 ‘순화교육’ 등을 명분으로 한 가혹행위를 당하고 청송감호소에 수용됐다. 3년여만인 1983년 6월30일 풀려났고 정신적 고통을 겪다 2023년 7월 국가를 상대로 ‘3억4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법원은 국가가 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위헌·무효임이 명백한 계엄포고에 따라 삼청교육대에서 순화교육을 받았고, 근로봉사라는 미명하에 구금 상태로 강제 노역을 했으며, 보호감호 처분을 받기까지 했다”며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는데도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의) 배상이 오랜 기간 지연됐다”고 봤다.

삼청교육대에서 벌어진 ‘순화교육’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A씨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서 진상규명 결정을 받지 않은 점은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됐다. 진화위는 2022년 처음으로 삼청교육대 사건을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벌어진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으로 공식 인정하고 약 400명에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이후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줄줄이 소송을 냈고, 승소 사례도 잇따랐다.
정부 측은 A씨와 소송에서 A씨가 국가폭력 피해를 인지한 날이 언제인지 애매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흐르면 사라지는데, A씨 사례는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아 기준점이 상대적으로 불분명하다. 정부 측은 A씨가 석방된 날(1983년 6월30일) 등을 기준으로 보면 배상 청구권이 이미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가 출소할 시점엔 국가의 불법행위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고 짚었다. 이어 대법원이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 등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는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처음 판결한 2022년 8월30일을 언급하면서 “적어도 이때까지는 A씨의 배상 청구권 행사가 객관적으로 불가능해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소송이 시작된 2023년 7월에도 A씨의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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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를 대리한 오민근 변호사(법률사무소 한우리)는 “그동안 정부는 진상규명 결정을 받은 경우가 아니면 배상해줄 수 없다며 피해자들을 구분 짓는 태도를 보여왔는데, 이번 판결을 통해 소멸시효를 이유로 국가가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 인정됐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 24일에도 진화위 진상규명을 받은 삼청교육대 피해자 12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정부 측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고 “국가가 총 14억 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들을 대리한 조영선 변호사(민변 삼청교육대 변호단 단장)는 “진화위 진상규명이 있었든 없었든 소멸시효에 문제가 없다는 게 확인됐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