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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에 없는 바다’로 들어선 세계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해도에 없는 바다’로 들어선 세계

트럼프 정권의 출현과 세계 질서의 혼란은 미국이란 ‘제국’이 내부 반란으로 ‘내파’를 겪게 된 결과다

세계 질서 변화의 향방은 당분간 오리무중서 벗어나지 못할 듯싶다. 1930년대의 경험을 반추해도 큰 도움이 안 된다

여기에 기후위기와 급격한 기술 전환 같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까지 덮쳐온다. 온 세계가 ‘해도에 없는 바다’로 들어선 셈이다

‘역사는 운(韻)을 맞출 뿐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의 트럼프 세력의 폭주와 그로 인해 출렁거리는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현 상태를 보는 많은 이들이 1930년대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다.

물론 많은 유사점이 있다. 1930년대에도 자유무역과 입헌주의에 근거했던 19세기의 세계 질서가 근본부터 무너져버린 바 있었고, 오늘날에도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 근 40년간 세계화를 이루며 형성되어온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1930년대와 오늘날의 세계 질서 변화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으니, 바로 미국의 위상이다. 1930년대의 미국은 영국 및 프랑스 등과 함께 기존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현상 유지’ 세력의 중요한 기둥이었지만, 최소한 트럼프 정권의 미국은 오히려 미국 스스로가 건설했던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근본부터 바꾸려고 드는 ‘현상 타파’ 세력의 전위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의 입장이 이렇게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것이 현재의 국면이 향후에 어떻게 전개될지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큰 원인의 하나라고 보인다.

1930년대의 대립 구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쉽고 명확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20년대에는 베르사유 조약과 워싱턴 회의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는 국제연맹의 건설, 경제적으로는 금본위제 및 자유무역 질서로의 회귀 등을 골자로 하는 세계 질서가 형성됐다. 하지만 여기에서 자신들이 부당하게 희생양이 됐다고 생각한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의 나라에서는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발호해 이러한 질서를 거부하고 ‘현상 타파’를 외쳤다. 이들은 이러한 국제 질서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함축돼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치경제 조직 원리까지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로 스스로를 무장한다. 이 세력에 장악된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추축 세력을 형성해 ‘신질서’니 ‘신체제’니 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외치면서 영국과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하게 되고, 이에 세계 평화가 깨어지고 2차 세계대전으로의 길이 열리게 된다.

당시 미국을 이끌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뉴딜 세력은 이러한 파시즘과 추축 세력의 도전에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맞섰다. 1930년대 말 히틀러가 유럽에서 군사적 긴장을 일으키고 있었던 당시 미국 국민들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참전 반대 일색이었지만, 진보 세력과 루스벨트 정권은 반파시즘의 입장을 분명하게 하고 심지어 악마처럼 멀리하던 소비에트 러시아의 스탈린과 손을 잡기까지 했다. 또한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모두를 폐지하고 전체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수밖에 없다는 파시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분명히 선을 긋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도 얼마든지 대공황 극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현상 유지’ 세력이 ‘현상 타파’

그런데 오늘날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참으로 복잡하며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이후 공산주의 진영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계획하고 이끈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아무도 넘보지 못할 압도적 군사력 우위로 세계 평화를 유지하면서 그 내부는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뿐만 아니라 자본의 이동 또한 완전히 자유로운 세계 시장과 미국의 정치 질서를 복제한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로 획일화하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면 불만이 있을 만한 나라들도 모두 주저앉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과 번영이라는 ‘평화배당금’을 안겨줌으로써 모두 체제 내로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중국·러시아와 일부 이슬람 세력 등 쉽게 이 질서 안으로 동화되지 않는 세력들이 존재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모두 이 거대한 ‘제국’ 질서 안으로 들어오리라는 (“역사는 끝났다” 혹은 “세계는 평평하다”) 낙관주의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미국의 트럼프 정권이 지금은 이러한 ‘제국’ 질서를 허무는 최전선에 있는 것이다. 이 질서에 대해 암묵적 명시적으로 도전을 꾀하던 중국·러시아·헝가리 등의 세력에 어이없게도 미국의 백악관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세력은 할 말이 있다. 지난 40년간 미국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만들어온 ‘제국’ 질서는 전혀 미국적이지도 않고 미국의 이익에 합치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질서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등 제조업을 통해 미국의 무역수지와 제조업을 병들게 한 나라들이며, 이를 통해 미국으로 돌아온 이익이라는 것도 월스트리트 금융 세력 및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초국적 기업들이 다 가져갔고, 일반 서민들에게는 실업과 빈곤만이 돌아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미국 스스로의 손으로 허무는 것이 바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첩경이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이다.

여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1세기 가까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서의 ‘현상 유지’ 세력이었던 미국이 순식간에 ‘현상 타파’ 세력으로 자리를 옮겨간 것이다. 힘의 균형추는 압도적으로 후자 쪽으로 기울어버렸다.

미국 민주당의 혁신도 기대 난망

물론 트럼프 세력의 폭주에 대해 미국 내부에서의 저항이 만만치 않으며, 그야말로 ‘조자룡 헌 창 쓰듯’ 마구잡이로 사방을 때려 부수는 현재 백악관의 정책 기조가 언제까지 지금의 기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사이에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로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온 기존 세계 정치경제 질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을 입게 될 확률이 크다. 이미 이번 트럼프의 관세 소동을 거치면서 자유무역이라는 암묵적인 제도에 대한 신뢰는 크게 무너졌으며, 국채 시장을 비롯한 금융 시스템의 작동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세력이 장악한 미국의 공화당을 가까운 미래에 미국 민주당이 대체할 가능성도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몇달 동안의 북새통으로 인해 트럼프 정권의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가운데에서도 민주당 지지세는 회복이 되기는커녕 사상 최저의 지지율을 경신하며 아래로 처박히고 있다. 요컨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트럼프 정권의 출현과 세계 질서의 혼란은 미국이라는 ‘제국’이 스스로의 내부에서 벌어진 반란으로 인해 ‘내파’를 겪게 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1930년대와 다른 당혹스러운 점이다. 그 당시에도 미국 내에서 파시즘과 극우의 준동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루스벨트 대통령과 미국 진보 세력은 결코 이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패권을 넘겨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들은 기존 19세기식 자유주의라는 것이 낡아 더 이상 대공황 이후의 세상을 설명할 수도, 거기에 대처할 수도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정책과 이념 모두에 있어서 과감한 혁신을 단행해 뉴딜로 대표되는 이른바 ‘새로운 자유주의’를 벼려낼 수 있었다. 지금의 미국 민주당이 과연 그러한 혁신을 이룰 수 있을까? 이 또한 가까운 미래에 벌어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우선 민주당 내에 이렇다 할 지도력을 발휘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보이지 않는다. 좌파 진영의 일부 인사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기존 틀에 너무나 강하게 매여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러한 혁신을 위해서는 전 정부뿐만 아니라 멀리 클린턴이나 오바마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가 민주당이 견지해온 노선과 입장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단절이 있어야만 하지만, 이러한 과감한 입장을 개진하는 정치인도 지식인도 현재로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세계 질서 변화의 향방은 당분간 오리무중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싶다. 1930년대의 경험을 반추해보아도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여기에 기후위기와 급격한 기술 전환과 같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까지 덮쳐오고 있다. 그야말로 온 세계가 ‘해도에 없는 바다’로 들어선 셈이다.

홍기빈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해도에 없는 바다’로 들어선 세계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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