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내란사태와 소명의식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12·3 비상계엄의 밤, 민주주의 지키겠단 ‘소명의식’으로 여의도로 간 수많은 사람들
다른 한편엔 종북좌파·반국가세력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전도된 소명의식’이 내란의 골 더 깊게 파헤쳐
유럽 계몽주의는 뉴턴역학 성공서 이성·합리적 사고 계승…이후 과학자들은 대대로 자연의 보편적 법칙 추구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보편 가치’는 뭘까…오랜만에, 조기대선서 던질 한 표에 과학자의 ‘소박한 소명의식’을 담아본다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내 또래에게는 그때 만화영화에서 봤던 ‘로보트 태권브이’나 ‘마징가제트’ 같은 대형 로봇이 아련한 로망으로 남아 있다.
로봇에 직접 탑승해서 조종하는 훈이나 쇠돌이가 되고 싶은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나 같은 아이들은 그런 멋진 로봇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그 무렵 ‘국민학생’의 장래 희망 1위가 과학자였던 것도 대형로봇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마징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나의 꿈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변형과 왜곡을 거쳤으나 과학자가 되겠다는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고3 모의고사(당시는 학력고사 시절이었다) 때는 항상 물리학과에만 지원했었다.
그렇게 아동기와 청소년기 10여년 동안 전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나의 진로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다. 하필 고3 때인 1989년이었다. 그해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선생님 23명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가입해 학교가 발칵 뒤집혔었다. 부산 소재 학교 중 가장 많은 숫자였다. 고3 2학기가 시작되면서 그중 세 분이 결국 해직되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거센 물결도 잘 몰랐던 나였지만 평소 존경했던 선생님들이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학교까지 떠나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문득 과학자로서의 내 전망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과학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바친 적이 있었던가. 왜 수많은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피를 흘리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과학자가 되겠다는 내 꿈이 하찮게 느껴졌다. 공권력을 부당하게 앞세운 국가 폭력에 맞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키는 일의 중요성을 처음 깨달은 모양이다. 재수를 한다면 정치학과나 법학과로 진로를 바꿀 생각까지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오랜 세월 과학과 함께하다 보니 과학의 그 무심함이랄까, 세상사와 다소 동떨어져 있는 매력을 점점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절대권력과 과학이 극적으로 충돌했던 1633년의 종교재판만 해도 그렇다. 갈릴레오는 4차례의 심문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주장하는 대신, 반대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논파하기 위해 <두 체계의 대화>라는 책을 썼다. 그러면서 코페르니쿠스를 믿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따위의 말도 전혀 없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 비굴해 보일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런 일에 목숨을 걸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갈릴레오의 진술에 따라 정치적인 파급력이 달라진다거나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갈리는 것도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과학에 목숨까지 걸진 않는다. 어차피 지구가 돈다는 사실의 수많은 증거가 사라질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 많이 밝혀질 것이다. 과학적 사실은 교회가 틀어막는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금서로 지정된 <두 체계의 대화>는 가격이 무려 12배나 뛰었다. 그러고 보면 갈릴레오가 교회권력을 기망한 것이 약간 통쾌하기도 하다.
그렇게 덤덤하게 살던 내 가슴에 다시 파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작년 12월3일 비상계엄을 빙자한 내란사태였다. 밤늦게까지 학생들 과제를 채점하다가 비상계엄선포를 전하는 뉴스 속보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마음은 빨리 여의도로 달려가서 계엄군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이라는 말이 글자로서가 아니라 물리적인 실체가 되어 내 몸의 모든 감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따위 쓸모없는 과학자라니.
그날 밤 여의도로 달려간 수많은 사람도 아마 나와 똑같은 공포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나와 달리 그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었다.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문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이들의 공로를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전도된 소명의식’이 내란사태의 골을 더욱더 깊게 파헤치고 있다. 박근혜 파면과 비교했을 때 윤석열 파면 정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파면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잘못된) 소명의식을 갖고서 내란사태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이들 친윤세력의 소명의식이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말했듯이 ‘종북좌파’ 같은 반국가세력을 척결해 이들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들과 반대되는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때려잡겠다는 게 핵심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민주공화국의 작동원리와 규범, 아니 그 이전에 보편적인 인권을 짓밟아도 괜찮다는 주장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 데이터 조작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주장만큼이나(실제로 그와 비슷한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기도 했었다) 주객이 전도된 궤변이다. 국가의 부당한 폭력에 맞선 국민의 최후 수단으로서의 국민저항권이라는 개념도 이들에게서는 거꾸로 국가의 부당한 폭력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변질돼버렸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계엄포고령에 말 안 듣는 의사들을 ‘처단’한다고 적은 것은 100% 진심이었을 것이다. 지난 4월19일 윤석열 지지 거리행진에 등장한 플래카드에는 “종북좌파 간첩 빨갱이 매국노 다 죽이자”라는 섬뜩한 문구도 포함돼 있었다. 아마도 그분들은 이게 대체 뭐가 문제냐고 나 같은 사람한테 오히려 윽박지를 것 같다.
최대한 선의를 가지고 이해하자면 이들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구국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 때와 비슷하다는 망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헌정체제를 부정하고 그 질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자신들을 정당화할 수 있다. 서부지법을 습격한 것을 마치 독립투사들이 조선총독부를 공격한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들에게 “지금 당신들의 행위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소”라는 법원의 판결조차도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위법한 행위를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 서부지법을 습격하고 재판을 받게 된 이들 일부가 자신을 스스로 국가유공자로 칭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전도된 소명의식은 이렇게나 무섭고 끔찍하다.
‘종북좌파 척결’ 등이 사실 완전히 새로운 구호인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는 사회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른바 ‘아스팔트 보수’의 길거리 집회, 일부 유튜브 또는 인터넷 게시판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제도권으로 진입하며 공식화되었다. 그전까지는 철 지난 이념 타령이 아닐까, 설마 하던 사람들도 정치권이나 언론 등을 통해 공식화된 담론으로 접하고 나면 용기를 갖게 된다. 트럼프의 등장 이전에는 미국 사회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금기의 말들이 트럼프 이후 봇물 터지듯이 쏟아진 경우와 비슷하달까.
짐승 같은 소리라도 나름의 소명의식을 장착하고 공적 영역으로 유통되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된다.
이후로는 그 소리가 더 큰 힘을 얻는다. 이데올로기는 생각과 행동의 지침이 되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들은 ‘계몽’이라 부른다. 애초에 유럽의 계몽주의가 뉴턴역학의 성공으로부터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를 물려받은 점을 고려하면 내란추종세력의 ‘계몽’은 언어도단에 가깝다. 진정한 계몽의 출발은 과학적 사고(이 칼럼의 표제를 빌리자면 ‘과학자의 발상법’)이다.
과학적 사고의 본질은 결국 보편성의 추구이다. 그 옛날 밀레토스 지역의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그랬다. 뉴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던 천상계와 지상계를 보편적인 중력법칙, 즉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용해 하나로 통일한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뉴턴 이후로 후대의 과학자들은 지금까지도 대대로 자연의 보편적인 법칙을 추구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모든 인간의 평등함, 거기서 비롯되는 국민주권주의가 핵심이지 않을까? 나는 우리 헌법의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을 그렇게 이해한다.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내란세력은 바로 이점을 부정한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평등하지 않으며 폭압적으로 때려잡아도 괜찮다고 여긴다. 서부지법 습격사건은 이 점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외신은 물론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조차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바로 이 보편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민주공화국의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는 망극한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형량이 더할 나위 없이 높은 내란 수괴 혐의자에게 법원과 검찰은 새로운 전례를 만들면서까지 온갖 특혜를 베풀어주었다. 법원의 영장집행을 가로막은 경호차장은 검찰의 비호 속에 아직도 구속되지 않고 있다. 행정부의 권한대행들은 대행의 권한을 넘어 위헌적인 상태를 초래하고 방치하기까지 했다. 국가의 주요 기관 요직 곳곳에 여전히 내란동조세력이 잔존해 헌정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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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국가 주요 기관이 오염되었다는 정황이 차고 넘치는 상태로 과연 내란사태를 온전하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번 내란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필요하다면 특별재판부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내란 수괴를 풀어준 재판부에 내란 수괴 재판을 맡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이번 조기 대선에서 나는 가장 철저하게 내란세력을 처벌할 방안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던질 작정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첫걸음이자, 세상 쓸모없는 과학자가 오랜만에 품어보는 소박한 소명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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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