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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기금 고갈 시점부터 보험료 부담 치솟아, 청년층 ‘불평등’ 지적 일리 있다”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그로 인해 추가되는 부담은 또 다시 후세대의 몫이다. 이번 결정으로 세대 간 불균형은 더 커지게 됐다.”
지난 3월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18년 만에 연금개혁이 이뤄졌다. 보험료율은 27년 만에 현행 9%에서 13%까지 오르고, 소득대체율은 40%(2028년 기준)에서 43%까지 늘어났다.
개혁안에 대한 여러 비판 중에서 가장 크게 부상한 것은 ‘세대 간 불평등’이었다. 여야 ‘3040’ 의원들 8명은 보험료 인상 부담을 젊은 세대에게 떠넘기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연금제도를 두고 “폰지사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다른 복지제도도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급격한 변화 앞에 놓여있다. 제도를 고쳐쓰는 과정에서 세대 간 갈등은 예정된 흐름이다. 하지만 ‘폰지사기’라는 원색적인 비난 대신, 타당한 근거를 토대로 한 논쟁이 필요하다.
연금 개혁 방향에서 있어서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두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세대 간 불평등’을 비롯한 쟁점들을 들여다봤다.

‘진보적 학자로 분류되지만, 연금에 대해서는 보수.’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공동대표이자 대표적인 연금전문가 오건호를 수식하는 말이다. 오 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기 연금개혁 논의에 참여한 연금 전문가이며, 2010년 이후에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을 만들어 시민복지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국민연금에 있어서 소득대체율을 현행보다 더 높여서는 안 되며 기금고갈시기를 더 늦춰야 한다고 보는 ‘재정안정파’로 분류된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전통적인 진보진영이 대체로 소득대체율을 높여서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상반된다.

그는 최근 쟁점이 된 국민연금의 ‘세대 간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도 다수의 진보진영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청년 세대도 개혁으로 인해 더 많은 돈(소득대체율)을 받게 되므로 청년세대도 개혁안이 더 이득이다’라는 진보진영의 의견에 대해, 국민연금 재정불균형을 고려하면 청년세대의 부담이 뒤로 갈수록 커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오 대표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국민연금 개혁안’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국민연금 개혁안’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국회에서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이 의결된 후에 ‘18년만의 국민연금 개혁,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아쉬운 점도 많지만 보험료율이 27년 만에 13%까지 올랐고, 소득대체율 논의에만 갇혀있던 벽을 넘어섰다. 연금에 대해 논의할 것들이 많은데 양당이 소득대체율만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 해왔지 않나. 이제 후속 개혁 의제를 다룰 수 있게 됐다.”

- 개혁안 통과 후에 가장 크게 쟁점이 된 것은 국민연금의 ‘세대 간 불평등’이다. 통과 직후 30~40대 국회의원들이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부담은 미래세대의 몫으로 돌리는 안’이라며 비판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내용들을 다 봤는데, 주장이 섞여 있어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이번 개혁으로 ‘기성세대들만 혜택을 받고 젊은 사람일수록 불리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소득 대체율 인상의 효과는 수급 기간이 더 길게 남은 젊은 세대에게 더 오래 적용된다. 젊은 세대가 받는 돈도 기존 제도에 비해 더 많아졌다. 기성세대가 높은 소득대체율을 뒀던 연금제도로 인해 과거에 받은 혜택이 너무 크지 않느냐는 주장은 국민연금 역사 전체에 대한 비판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제도에 소급 적용을 시킬 수는 없으니) 이번 개혁안에 대한 비판은 될 수 없다.

다만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부터는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진다. 소득대체율을 43%로 함께 올리게 되면서 기금 소진 시점을 더 늦추지 못했고, 소진 이후 후세대 부담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는 일리있는 지적이다.

- 국회 모수개혁으로 인해 기금고갈 예상 시점이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미뤄졌다. 기금고갈 시점을 더 늦추는 것이 왜 중요한가.

“기금 소진 시점을 기점으로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훨씬 커진다. 적립식(기금을 적립했다가 나중에 본인이 받을 때 지급하는 방식)에서 부과식(현재 일하는 사람들이 낸 보험료를 모아서, 연금을 받는 사람에게 즉시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면 보험료율이 대략 30% 이상으로 치솟는다.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3%까지 올리면 기금 소진 후 부과방식 보험료율이 39.2%까지 올라간다.

보험료율 인상은 연금 재정의 ‘전반전’에 영향을 미치고 소득 대체율 인상은 ‘후반전’에 영향을 미친다. 기금 소진 이후부터 소득 대체율 인상의 후폭풍이 본격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금 고갈이 오기 전에 가입자가 내는 만큼 받는 ‘수익비’, 즉 수지균형을 좀 평평하게 맞추자고 하는 것이다.

부과식 연금제도의 모델로 거론되는 스웨덴은 우리보다 보험료율이 훨씬 높으며, 스웨덴도 완전 부과식으로 운영되진 않는다. 본인이 직접 부담하는 보험료 18.5% 중에 2.5%는 적립시키는 일부 적립식을 취한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의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 결과(2023). 모수개혁으로 인해 소득대체율이 43% 수준까지 올라가면서 기금 고갈 이후 보험료율은 최고 39.2%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의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 결과(2023). 모수개혁으로 인해 소득대체율이 43% 수준까지 올라가면서 기금 고갈 이후 보험료율은 최고 39.2%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 청년층은 기금고갈 후 연금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데, 개정안에 ‘지급보장 명문화’를 넣었다. 국가가 보장하는 연금이 미지급되는 일은 없지 않겠나.

“‘지급보장 명문화’라는 말이 아름답게 들릴 수는 있어도, 그 문구에 기댈 수는 없다. 공무원연금을 보면 알 수 있다. 공무원연금법에는 부족분을 국가에서 부담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에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면서 물가 상승률에 따라서 연금액을 상향 조절해주는 조항을 5년 동안 중지했다. 물가상승률이 연 3%라고 하면, 5년이면 15% 급여 삭감 효과가 발생한다. 국가 지급보장 문구가 있다고 해도 기금고갈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는 시점이 되면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다.”

- 국고 지원을 더 늘려서 기금고갈에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선 한국이 연금에 국고 지원을 적게 한다는 주장 자체는 사실과 다르다. 독일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들을 국고 지원의 예시로 많이 드는데, 한국으로 치면 기초연금이나 크레딧 제도에 국고를 투입한다. 보험료가 부족해서 생긴 적자에 국고를 지원하는 나라는 일부다. 한국은 국민연금 국고 지원에 1조원 가량만 쓴다고 비판하는데, 기초연금에 연간 25조원을 이미 쓰고 있다.

또한 진보 진영에서는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것을 무조건 선으로 생각하거나, 공공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오래 가입한 사람일수록,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혜택이 크게 돌아가기 때문에, 현재의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낮은 보험료율 수준에서는 오히려 ‘역진성’을 초래하는 제도다. 이러한 제도에 대해 국고 투입을 늘리는 것은 상위 계층이 보는 이득을 더 늘리는 면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국민연금 개혁안’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국민연금 개혁안’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 등은 “복지제도를 두고 세대 간 유불리를 따지기 시작하면,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복지가 사라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 연금제도의 속성상 앞세대가 뒷세대에 비해서 급여 수급에 있어서 조금씩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청년층만 세대 간 불평등 문제를 너무 과도하게 제기하는 것은 아닌가. 앞세대는 기금 조성에 기여했지 않나.

“앞세대의 기여가 있다는 말이나, 세대별 형평성이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복지 제도는 재분배 제도다. 제도 자체를 놓고 계층 간이나 세대 간에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소득이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거두기 때문에 부자들이 불리하다고 여길 수 있다. 앞 세대가 받는 급여는 지금의 청년 세대가 형성하는 재원이 들어가니, 이에 대해서도 세대 간에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 있다.

20세기에는 계층 간 형평성, 세대 간 형평성을 따지지 않고 ‘연대’라는 공적 가치에 기반해 공적 연금이 잘 굴러갔다. 그런데 저출생, 고령화로 인해서 뒷세대로 갈수록 노년 부양 부담이 훨씬 무거워졌다. 현재는 생산인구 100명당 25명의 노인을 부양하는 구조인데, 2067년쯤에는 120명까지도 올라간다. ‘세대 간 연대’라는 공적 연금의 속성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후세대의 부양 부담이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 소득대체율 인상 없이는 노인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왜 노후소득보장을 위해서 국민연금, 그중에서도 연금의 ‘명목 소득대체율’만 두고 말하나.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될 때는 65세 이후 기대 여명이 15년 정도였는데, 앞으로는 25년 정도로 길어질 전망이다. 연금 수급 기간이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소득 보장을 설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다른 연금 제도들을 손봐서 ‘다층연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기초연금은 70%가 아닌 소득보장선에 따라 하위 계층 중심으로 받을 수 있게끔 누진적인 구조로 바꾸고, 퇴직연금의 연금화도 추진해야 한다.

소득대체율 인상 없이도 국민연금 의무 가입 연령을 59세에서 64세로 올리면 명목 소득 대체율 5% 인상의 효과가 바로 나온다. 60~64세 연령대 사람들의 고용률이 64%다. 이들은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다. 정년 연장은 노동시장 중심부 집단의 고용 안정성을 더 연장하는 것이지만, 의무 가입 연령 상향은 정규직이 아닌 사람들까지 포용할 수 있다.”

- 세대별 차등보험료나 자동조정장치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세대별 차등보험료는 젊은 세대에게 연금제도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괜찮은 안이라 생각했다. 보험료율이 당장 13%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매년 0.5%포인트씩 인상되기 때문에, 50대 중반인 사람은 연금 수급 개시 시점에서 내는 보험료율은 13%까지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대체율은 43%를 바로 적용받는다. 그런데 20~30대는 13%로 오른 보험료율을 가입 기간 내내 적용 받는다. 세대간 격차가 분명하다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차등은 ‘적극적인 차등’이기에 시도해볼 만하다.

자동조정장치는 논의하기에 시기상조인 안이다. 수급개시연령 상향, 기금 수익 제고, 국고 지원, 추가 보험료 인상 등 재정안정화를 위한 여러 방안이 있는데 급여 구조를 깎는 자동조정장치부터 논의하는 건 맞지 않는다.”

- 국회에서 연금 특위가 가동 중이다. 앞으로의 개혁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나.

“이번에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집중해 모수개혁이 되면서 빠진 것들이 있다. 의무 가입 연령 상향, 출산크레딧 첫째 자녀부터 24개월까지 적용, 도시지역 가입자에게도 농어민과 동일하게 크레딧 지원하는 것 등을 논의해야 한다. 구조개혁으로는 기초연금을 대상을 줄이면서 금액은 누진적으로 올리는 ‘최저보장’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공무원 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과의 통합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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