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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정치 혁명을 바란다

[이진우의 거리두기]탄핵 이후, 정치 혁명을 바란다

탄핵이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위기에 빠뜨렸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지만, 계엄 사태를 유발한 정치 구조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거의 예외 없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갈등은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국민이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꼽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염불처럼 외우는 사회통합은커녕 갈등을 오히려 부추긴다. 대립하면 할수록 유리하다는 기괴한 공식에 감염된 도착적 정치 문화가 지속되는 한 헌정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1987년 체제는 끝났다. 오랜 독재를 경험한 국민의 염원이었던 대통령 직선과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임기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 현행 헌법은 38년이 지난 지금 역사적 수명을 다했다. 세 번의 탄핵과 전임 대통령들의 불행한 감옥행은 ‘87 체제’의 한계와 폐해를 분명히 말해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유할 수 없는 사회 분열과 그로 인한 정치적 신뢰의 붕괴이다. 이렇게 심각한 병리적 현상에도 우리가 유일하게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은 정권이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교체되었다는 사실이다. ‘87 체제’가 남긴 유일한 민주적 요소는 오직 형식적 선거뿐이다.

합법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은 처음에는 한결같이 협치와 사회통합을 외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국정 안정의 명분을 내세워 오히려 대립과 갈등으로 내몰리는 것은 모두 왜곡된 정치 구조와 문화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헌정 질서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헌법 개정을 통해 미래사회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정권을 위해 경쟁하는 모든 정치적 세력들이 당파적 이익을 뛰어넘어 어떤 헌법적 질서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성찰하고 검토한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한때 정치권 일부에서 거론되었던 개헌 논의는 대선 정국에 묻혀 완전히 증발한 것처럼 보인다. 선거 때마다 언급되고 오랫동안 논의된 헌법 개정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미래의 공동이익보다는 현재의 특수이익이,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파당을 위한 정권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선과 동시 투표 개헌을 제안했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반대하면서 결국 사흘 만에 철회했다는 것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할 권력 구조 개편에 소극적인 것은 권력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새 정치 만들어낼 정치 혁명 필요

그러나 우리의 정치 구조를 혁명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에겐 헌정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낼 ‘정치 혁명’이 필요하다. 왜 정치 개혁이 혁명적이어야 하는가는 ‘탄핵 이후의 정치’에 관한 사고 실험을 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재의 정치 구조가 지속되는 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정치 무대에서 제거한다고 해서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지 않는다. 대화와 협치를 거부하고, 아집과 독선으로 무장한 제2의 윤석열은 이미 어디에선가 자라나고 있다. ‘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지금의 분위기처럼 이재명 후보가 합법적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면, 그가 내세우는 ‘진짜 대한민국’이 실현될까? 나는 여기서 논의의 초점을 인물에 맞추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좋아하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무조건 싫어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은 어떤 말과 논거로도 설득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그가 통치하고 직무를 수행할 조건과 구조이다.

왜 정치 혁명이 필요한지를 알려면 탄핵 이후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2025년 6월3일 이재명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0.73%포인트보다는 많은 차이로 승리할 것이다. 민주당은 2028년 제23대 총선까지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이 일치하는 여대야소의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정책 실현의 필수적인 조건인 입법 권력은 엄청난 재량권을 보장할 것이다. 사법부는 형식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하겠지만, 현재의 정치 구도에서 사법부의 정치화는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하다. 헌정 질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도 대통령 몫의 추천권을 사용함으로써 이념적으로 유리한 구도로 구성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쟁취한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도 돼’의 절대권력을 보유할 것이 분명하다.

왜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인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정권이 비로소 대통합의 정신으로 무너진 민생, 평화, 경제, 민주주의를 회복하여 ‘진짜 대한민국’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정치에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통치자의 너그러운 아량과 관용에만 의지하는 정치이다. 계몽 군주가 설령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더라도, 그가 절대권력을 가진 군주인 한 여전히 자의적이다. 절대권력을 획득한 통치자는 법 자체를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의 통치는 겉으로는 ‘법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안정한 ‘인치’이다. 헌정 파괴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말은 헌법 개정을 하지 않는 한 정치적 선동과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차기 대통령, 개헌 통해 이뤄내야

우리는 사회통합과 정치 개혁을 약속하는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말을 정말 믿고 싶다. 나라가 두 진영으로 갈라진 현재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그를 신뢰하지 않는 국민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진영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권력 구조이다. 국가적 분열이나 대립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에 발린 소리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한 사회통합은 오직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재건할 때만 가능하다. 윤석열 탄핵 심판에 대한 선고를 내리면서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헌법 제1조를 인용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도 진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천명한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사태를 국민의 힘으로 평화롭게 저지하고 헌재의 판결에 순응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를 극적으로 부활시켰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촛불 혁명에 이은 빛의 혁명은 더더구나 아니다. 진짜 대한민국인 민주공화국을 실현하려면, 헌정 위기를 예방하고 민주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헌재가 판결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모든 민주적 통치자는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뜻이 공정하게 반영되고 견제와 균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체제가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신권위주의로 알려진 정치 현상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지도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제도적 견제와 균형을 해체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과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처럼 신권위주의 정권은 헌법적 합법성의 외관을 유지하면서도 민주주의 제도를 체계적으로 약화시키고, 사법부를 종속시키고, 언론을 통제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한때 국민 권리와 시민 자유의 든든한 수호자였던 헌법재판소가 충성파들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사법부의 정치화는 결국 새로운 합법적 독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약화하였다.

우리가 탄핵 이후 진짜 대한민국인 민주공화국을 원한다면,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권력 구조를 개편하는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정치 혁명이다. 승자독식의 선거 제도를 개편해 정당에 대한 지지 비율이 정확히 의석수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헌법 개정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민 전체보다 진영의 당파적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확실한 징표이다. 다음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통한 정치 혁명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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