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서혜경, 60년 기념 릴레이 콘서트…“예술은 기술이 아닌 인생, 희로애락 들려줄 것”

“예술은 기술이 아닌 인생이고, 인생은 세월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65)은 29일 서울 중구 푸르지오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음악에 담을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혜경은 세계 무대에 진출한 한국인 피아니스트 1세대에 속한다. 그는 스무 살이던 1980년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1위 없는 공동 2위를 차지해 이름을 알렸다.
올해는 그가 피아노를 시작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서혜경은 이를 기념해 5월에 네 차례 릴레이 콘서트를 연다. 5월7일, 13일, 27일엔 용산구 일신홀, 21일엔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연주한다.
“젊은 혈기로 빠르고 크게 피아노를 치던 때와 지금은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교수로 살면서 세계 무대도 놓치고 싶지 않아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제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깊은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서혜경은 2006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항암치료가 진행 중이던 2008년 1월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KBS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3번을 잇따라 연주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 공연을 60년 연주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무대로 꼽았다.
“방사선치료를 33번, 항암치료를 6번 받았어요. 우울증도 심했죠. 그런 상황에서 연주 제안을 받고 라흐마니노프 2번과 3번을 연주했어요. 그 어떤 불행도 이기고 다시 설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무대였습니다. 관객들이 모두 울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로맨틱 스타일 피아니스트’로 정의했다.
“건반악기는 현악기와 달리 자연스럽게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를 만들기 힘들어요. 노래하듯 연주하기가 어렵죠. 요즘 유자왕이나 랑랑 같은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굉장한 테크닉을 자랑하는데 서커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테크닉을 자랑하기보다는) 사람의 영혼을 건드리는 로맨티시즘을 추구합니다.”
- 문화 많이 본 기사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는 젊은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피아노는 경험을 담는 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신비한 악기예요. 테크닉만으로 승부를 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콩쿠르는 시작일 뿐입니다. 결코 자만하지 말고 자신이 피아니즘을 순례하는 초보자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번 릴레이 콘서트 프로그램은 그가 각별히 아끼는 곡들로 짜여 있다. 7일에는 작곡가 류재준의 녹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21일에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랩소디와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27일에는 류재준의 녹턴,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인다. 13일에는 플뢰르 앙상블과 함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