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이 외국인보호소 고문사건 국가배상 청구 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정화 기자
외국인보호소에서 사지가 등쪽으로 결박돼 몸이 꺾인 채 방치되는 ‘새우꺾기’ 등 가혹행위를 당한 외국인 피해자에 대해 1심에 이어 2심 법원도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일부 있다”고 판결했다. 이주민을 구금하는 외국인보호소와 법무부의 관행이 공권력 남용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피해자가 겪은 물리적 폭력과 심리적 고통에 대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3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9-1부(노진영·변지영·윤재남 부장판사)는 모로코 국적 나스리 무라드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국가가 11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된 손해배상액 1000만원에 더해 위자료 100만원을 추가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추가로 인정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무라드는 2017년 10월 난민 신청을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체류 자격 연장 기한을 놓쳐 2021년 3월부터 경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수차례 가혹행위를 당했다. 3개월간 12차례 이상 독방에 구금된 것에 대해 항의하자 새우꺾기 등을 당하고 장기간 방치됐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발목수갑, 케이블타이, 박스테이프 등 법령상 사람에게 사용할 수 없는 장비가 사용됐다.
당시 법무부는 “자해방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인권 침해’라고 인정했다. 이후 법무부는 업무처리지침(법무부 예규)을 개정하고 보호장비 등에 대한 정기적 직무 교육 실시 등 개선책 마련을 약속했으나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오히려 무라드가 직원을 폭행하는 등 손해를 끼쳤다며 고발했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2022년 12월 4000만원대 국가 배상을 청구했다.
이날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된 인권침해 행위에 더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서도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무라드 측의 문제 제기에 법무부는 보호소 내 폐쇄회로(CC)TV 영상과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무라드 측은 “사건과 관계없는 영상을 자의적으로 편집하고 피해자의 동의 없이 유포했다”고 밝혔다. 원고 측 대리인 이한재 변호사는 “법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대해 법원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인정한 첫 사례일 것 같다”며 “심지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CCTV 화면을 편집해 자극적으로 내보냈던 사건에서 국가 책임이 인정된 것이기에 역사적인 판결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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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후 한국을 떠난 무라드는 이날 대리인단을 통해 “제가 겪은 고문이 심각한 신체·정신적 고통을 초래하고 기본적인 인간 존엄성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법원이 마침내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유엔(UN) 기준에 맞는 실질적 배상이 아니다”라며 “가해자들은 여전히 어떤한 책임도 지고 있지 않고, 공식적인 사과나 회복 조치도 없었다. 진정한 정의를 위해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대리인단은 위법한 독방 구금이 2심에서도 인정되지 않은 점에 관해선 추가로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