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과학책을 읽을 일이 많지만 역사나 철학책도 좋아하고, 소설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많다. 직접 차를 운전하면 30분, 버스로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갈 때는 망설임 없이 늘 버스를 탄다. 흔들리는 차에서 글을 읽어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복을 타고났다. 책 읽으며 보낸 버스 1시간이 운전대를 잡고 보낸 30분보다 짧다. 내게 책은 순간이동 장치다.
매달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 클럽을 두 곳에서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벌써 9년째다. 몇해 전부터 이런저런 일이 늘어 좀 바빠지긴 했지만 아무리 바빠져도 내가 먼저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모임 전에 먼저 책을 꼼꼼히 읽고 글로 요약한다. 그러고는 내 생각도 일부 보태 강연 자료를 만든다. 내가 정말 좋아해서, 힘들어도 매번 반복하는 일이다. 게다가 독서 클럽에 참여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여럿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같은 사람은 없다. 늘 배운다.
책 읽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한 학기 내내 학생들과 함께 자세히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다.
학생들은 책을 먼저 읽고, 읽은 것을 글로 정리해 제출한 다음 수업에 참여한다. 매주 조의 구성을 달리해 동료 학생들과 토론하고, 토론으로 더욱 깊어진 생각을 또 글로 정리해 제출한다. 매주 두 편의 글을 써야 해서 과제 양이 적지 않고, 나도 여러 학생의 글을 매주 읽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그래도 내게 무척 즐거운 이 수업이 학생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론 내용과 학생의 글이 발전하는 걸 보는 것도 큰 기쁨이다.
얼마 전 수업에서 우리 인간의 기억을 뇌 안이 아닌 밖으로 옮긴, 기억과 정보의 외주화 도구로 책과 도서관을 묘사한 <코스모스>의 내용에 대해 토론했다. 학생들과 함께 요즘 부상하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기억의 외주화’를 넘어 ‘사고의 외주화’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볼 수 있다는 주장, 아니라는 주장이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내가 옳고 당신이 틀리다는 것을 주장해 칼로 무 자르듯 결론을 얻는 것이 토론은 아니다. 토론은 내가 가지고 있던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 다른 이의 주장에 귀 기울여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AI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진행한 학생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방금 펼친 소설에 따뜻한 봄날 지하철로 장례식장에 가는 주인공이 묘사돼 있다고 해보자. 따뜻한 봄날, 지하철, 장례식장은 사실 세상에 없다. 지하철이라고 우리가 뭉뚱그려 말할 뿐, 선로 위를 달리는 기다란 여러 탈것은 세상에서 늘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물체로만 존재한다. 세상에 장례식장도 없다. 장례를 치르는 여러 장소가 개별적으로 현실에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늘 여러 구체적인 대상이 가진 공통점을 추출하고 그렇게 추출된 개념에 ‘지하철’이나 ‘장례식장’이라는 보편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부여한다. 책은 글로 쓰이고 글에 포함된 모든 단어는 결국 추상화의 결과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의 구체성을 포기할 때만 우리는 개념을 구성해 생각을 전달하고 사고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과 글로 이해한 것이 세상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다. 세상은 책보다 훨씬 더 크고, 책에 담기는 것은 광막한 구체성의 세상을 극도로 추상화한 극히 일부의 단면일 뿐이다. 나를 포함한 소위 학자라는 먹물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책을 읽고 이해한 것은 책이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기껏해야 다른 이의 경험을 글의 형태로 간접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읽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 모조리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서 각자는 자신의 구체적 삶을 경험할 뿐이다. 다른 이의 삶과 인류의 지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습득하는 데 책 읽기는 큰 도움이 된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책 읽기의 한계도 함께 떠올리자고 다짐한다. 나는 책을 읽었을 뿐이다. 나는 세상을 모른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