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책으로 본 세상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책으로 본 세상

입력 2025.04.30 20:50

수정 2025.04.30 20:52

펼치기/접기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책으로 본 세상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과학책을 읽을 일이 많지만 역사나 철학책도 좋아하고, 소설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많다. 직접 차를 운전하면 30분, 버스로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갈 때는 망설임 없이 늘 버스를 탄다. 흔들리는 차에서 글을 읽어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복을 타고났다. 책 읽으며 보낸 버스 1시간이 운전대를 잡고 보낸 30분보다 짧다. 내게 책은 순간이동 장치다.

매달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 클럽을 두 곳에서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벌써 9년째다. 몇해 전부터 이런저런 일이 늘어 좀 바빠지긴 했지만 아무리 바빠져도 내가 먼저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모임 전에 먼저 책을 꼼꼼히 읽고 글로 요약한다. 그러고는 내 생각도 일부 보태 강연 자료를 만든다. 내가 정말 좋아해서, 힘들어도 매번 반복하는 일이다. 게다가 독서 클럽에 참여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여럿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같은 사람은 없다. 늘 배운다.

책 읽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한 학기 내내 학생들과 함께 자세히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다.

학생들은 책을 먼저 읽고, 읽은 것을 글로 정리해 제출한 다음 수업에 참여한다. 매주 조의 구성을 달리해 동료 학생들과 토론하고, 토론으로 더욱 깊어진 생각을 또 글로 정리해 제출한다. 매주 두 편의 글을 써야 해서 과제 양이 적지 않고, 나도 여러 학생의 글을 매주 읽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그래도 내게 무척 즐거운 이 수업이 학생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론 내용과 학생의 글이 발전하는 걸 보는 것도 큰 기쁨이다.

얼마 전 수업에서 우리 인간의 기억을 뇌 안이 아닌 밖으로 옮긴, 기억과 정보의 외주화 도구로 책과 도서관을 묘사한 <코스모스>의 내용에 대해 토론했다. 학생들과 함께 요즘 부상하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기억의 외주화’를 넘어 ‘사고의 외주화’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볼 수 있다는 주장, 아니라는 주장이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내가 옳고 당신이 틀리다는 것을 주장해 칼로 무 자르듯 결론을 얻는 것이 토론은 아니다. 토론은 내가 가지고 있던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 다른 이의 주장에 귀 기울여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AI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진행한 학생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방금 펼친 소설에 따뜻한 봄날 지하철로 장례식장에 가는 주인공이 묘사돼 있다고 해보자. 따뜻한 봄날, 지하철, 장례식장은 사실 세상에 없다. 지하철이라고 우리가 뭉뚱그려 말할 뿐, 선로 위를 달리는 기다란 여러 탈것은 세상에서 늘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물체로만 존재한다. 세상에 장례식장도 없다. 장례를 치르는 여러 장소가 개별적으로 현실에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이처럼 늘 여러 구체적인 대상이 가진 공통점을 추출하고 그렇게 추출된 개념에 ‘지하철’이나 ‘장례식장’이라는 보편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부여한다. 책은 글로 쓰이고 글에 포함된 모든 단어는 결국 추상화의 결과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의 구체성을 포기할 때만 우리는 개념을 구성해 생각을 전달하고 사고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과 글로 이해한 것이 세상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다. 세상은 책보다 훨씬 더 크고, 책에 담기는 것은 광막한 구체성의 세상을 극도로 추상화한 극히 일부의 단면일 뿐이다. 나를 포함한 소위 학자라는 먹물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책을 읽고 이해한 것은 책이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기껏해야 다른 이의 경험을 글의 형태로 간접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읽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 모조리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서 각자는 자신의 구체적 삶을 경험할 뿐이다. 다른 이의 삶과 인류의 지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습득하는 데 책 읽기는 큰 도움이 된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책 읽기의 한계도 함께 떠올리자고 다짐한다. 나는 책을 읽었을 뿐이다. 나는 세상을 모른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