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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고쳐 쓰기

세 번째 ‘대선의 봄’이 그리 따뜻하지 않다. 말문을 닫은 사람들 사이에서 흥은 실종되고, 정치의 온도는 좀체 오르지 않는다. 6·3 조기대선이 열리기까지 한국 사회는 모진 정치의 계절을 견뎌내야 했다. 역사의 심연 속에 박제했다 믿었던 온갖 어두운 기억들이 하룻밤 새 무진을 점령한 안개처럼 밀려오는 것을 목도하였다. 음험한 독재의 망령과 교활한 이념 내전의 유령들, 광기 어린 폭력의 악령들까지. 악몽의 밤들을 견디며 절감한 것은 “민주주의는 고쳐 쓰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으며 언제든 고장 날 수 있기에 미리 살펴 예비하는 것 또한 지금 민주주의의 몫이다.

우리는 ‘국가가 어떠해야 한다’는 데는 몰두했지만, 그 ‘어떤 국가’를 만들기 위해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깊이 각성하지 못했다. 분쟁도 마다 않을 만큼 ‘열정’엔 능했으나 ‘이성과 논리’에는 서툴렀다. 그리 보면 한국 사회는 아직 국가 건설의 과정에 있는 듯한 착시마저 든다. 한국 민주주의 고쳐 쓰기는 ‘어떤 국가’가 아니라 ‘어떤 정치’에 영감을 주어야 한다. 그럴 때 구시대를 닫고 새 시대를 여는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어떤 정치’의 원칙들은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공유되었다. ‘극단’의 배제가 우선이다. 헌법에 집약된 민주주의의 공통분모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은 주장은 해도 정치 시스템에서 중요한 지분을 가져선 안 된다. 포용을 혐오로, 관용을 차별로 파괴하는 그들의 소음은 국가·사회의 통합을 깰 뿐 건강한 정치에 힘을 보태지 못한다. ‘인권·평등·다양성’이 시민들 사이에 확고한 ‘공리’로 자리잡도록 할 책무가 정치에 있다. 그 점에서 내란의 잔재들과 극우에 휘둘리며 퇴행하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은 몹시 우려스럽다.

둘째는 어떤 생산성 있는 정치적 합의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 정치가 민생과 국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극단으로부터 공격당할 수밖에 없다. 극단은 현실의 비참을 자양분으로 퍼지는 독버섯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는 5년 전 <글로벌 트렌드 2040>에서 “정치적 연립을 구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20년 뒤를 내다본 일종의 인류 미래 보고서인데 ‘정치 불안’을 세계의 가장 심각한 위험으로 지목하면서였다.

역사를 보면 전쟁을 한 지도자는 모두 종국적으로 실패했지만, 동맹을 고민한 지도자는 대개 성공했다. 이는 정치의 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연합정치’의 규칙과 문화, 제도화가 필요하다. 대선 9부 능선을 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것도 같은 문제의식일 것이다. 하지만 가치·방향만으로는 부족하다. 연합정치를 위한 어떤 양보와 절제의 정치 규율을 만들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다 근원적이고 넓은 민주주의의 확립이 되어야 한다. 악령들의 반동을 보며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더 깊게 뿌리내려야 함을 절감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문에서 밝혔듯 지금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양한 존재를 공정하게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원성·다양성·포용성을 견고하게 만들 보편적 기본권의 확립이 핵심이다. 한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들이 경제발전의 목표가 돼야 하듯, 국가의 성장은 공동체의 가장 작고 외로운 이들을 향해야 한다.

지금 헌법이 태어난 198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해진 시민의 목소리가 담기고, 국민주권과 권력기관에 대한 문민통제가 보다 여실히 반영되는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 정치 시스템만 좀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양당의 독점을 허물고 다당제가 싹틀 수 있도록 제도를 구성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국민발안·국민소환 등 헌법에 없는 직접민주주의 방안들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은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을 다루지만, 그 결과는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퇴행하다 보면, 정치가 미래를 위한 일임을 자주 잊게 된다. 민주주의 고쳐 쓰기 없이 이대로 또 흘러간다면 권력을 잡고 끊임없이 불화하는 운명은 예정된 것이다. 한 시대가 미래의 평안을 위해 현재를 수술하지 못하면 ‘윤석열들’과 같은 비극을 불러오는 게 정치의 인과응보다. ‘잔인한 4월’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듯 묵은 정치의 우상 더미를 깨트리고 정치의 새싹을 틔워야 할 새봄이다. 시민의 힘을 민주주의 결함 교정과 정치 변화를 향해 쏟아야 한다. 그때 세계에 영감을 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다음 장’은 완성될 수 있다.

김광호 논설위원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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