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사람이 없는 광장을 마주치면 어릴 때 기억이 되살아난다. 기억은 우연찮은 순간 폐부를 찌른다. 5월18일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야 할까. ⓒ레나
유치원에도 입학하기 전의 일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걷다가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어딘가로 들어갔고, 엄마도 내 손을 잡고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뛰던 엄마가 내 손을 놓쳤다. 겁에 질려 멍하니 서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재빠르게 낚아채더니 어두운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삽시간에 거리가 텅 비었다. 모인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만 아니라면, 진공 속에 들어온 듯 시간이 멈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빛 속으로 나오니 젊었던 엄마가 울부짖으며 나를 찾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붙잡고 우는 엄마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1984년, 아니면 1985년의 일이다.
1981년 9월 ‘88 서울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제5공화국은 올림픽을 열 수 있을 만한 도시로 서울을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웠다. 1984년부터 외부적으로는 도시 미화를 빌미로 재개발을 추진했고, 내부적으로는 군사정권을 통한 강력한 억압 정치를 펼쳤다. 언제든 북한이 남침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조장했고, 민간인 또한 전시 체제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며 공습 대비 훈련을 하곤 했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행인들 모두 지하철역이나 지하상가, 민방위대피소로 피신을 해야 했다.
표면적인 이유야 그럴듯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을 통제하려는 수단이었다. 학교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다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아이를 잃었을까봐 거리에서 울부짖던 젊은 엄마의 공포나 모르는 아이를 들쳐업고 뛰었을 여성의 불안은 사소한 일들이었다. 공습 훈련의 부당함, 정권 탈취의 불법성,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정규 교육은 침묵했다. 전두환이 저지른 잔혹 행위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교과서에 처음으로 수록된 것은 1990년 이후이다.
2005년 광주의 참혹했던 현장에 대해 처음으로 듣게 됐다. 열 살 많은 광주 출신 직장 선배가 술에 취해 토해내듯 뱉어낸 기억은 내가 어릴 때 겪었던 공포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가 사투리를 숨기는 이유를 들었을 때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매년 되풀이되는 그의 5월 기억은 여전히 체기로 남아 있을까.
5월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야 할까. 다시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