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헤어드라이어를 안 쓴다. 친환경 실천보다 드라이어로 머리 말리기가 더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텀블러와 접이식 용기를 들고 다니고 8층까지 계단을 오른다. 텀블러는 보온·보랭에 탁월하고, 계단은 공짜 헬스장인 셈이고. 용기에 리필하면 탄소중립 포인트로 2000원을 환급받으니 좋다. 그리고 허벅지에 바늘 꽂는 심정으로 참아내는 환경 실천이 있으니, 바로 비행기 안 타기다. 이 지면에 ‘최소 3년은 비행기 안 타!’라고 두 번이나 선언했는데, 온 동네 소문내서 안 타보려는 안간힘이었다.
단, 해외여행에 한해서다. 국내선 안 타기야 식은 죽 먹기지. 비행기는 이착륙 때 ‘끙차’ 온 힘을 내므로 에너지 소비가 많다. 그 결과 단거리 비행의 마일당 탄소 배출량은 장거리 비행보다 70%나 많다. 다행히(?) 한국은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은 대륙도 아니고, KTX가 있는 나라다. 제주도만 빼면 육상 교통만으로도 지역 간 이동이 쉽다. 그런데도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KTX가 더 비싸서, 혹은 기차표가 매진돼서라고 했다. 보안 검색과 체크인 시간, 공항에서 시내까지 오는 시간 등을 따지면 사실상 비행기가 더 빠르지도 않아서 굳이 탈 이유는 없단다. 더 저렴하고 더 쉽게 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굳이 비행기를 탈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말이 쉽지 뭔 돈으로 기차와 버스를 더 저렴하게 더 자주 운영하냐고 물으신다면, 신공항 지을 돈으로 하면 된다고 하겠다. 국토교통부는 10개의 신공항 건설을 고려 중인데, 건설비만 40조원이 넘는다. 특히 갯벌과 습지를 메워서 짓는 가덕도, 새만금 공항 등은 땅꺼짐으로 인해 유지보수비가 더욱 불어날 예정이다. 갯벌을 메워 야영장 지어놓고 국격이 ‘폭망’한 잼버리 사태의 공항 버전 아닌가. 이미 전국에는 15개 공항이 운영 중이며, 이 중 11개는 수요가 없어 한 해 1400억원의 만성 적자가 쌓이고 있다.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 근처 군산공항의 2023년 활용률은 단 0.8%였다. 신공항 사업들에 사업성이 있다며 예측한 수요대로라면 국내선 이용객은 국내 인구의 2배인 1억명이 될 전망이다. 이게 말이야, 인해전술이야. 더구나 새만금, 제주, 가덕도 공항 등은 철새 도래지에 위치하며, 일부 예정지는 제주항공 사고가 난 무안공항보다 조류 충돌 위험도가 650배나 높다.
“왜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냐”고 일갈한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말을 재활용하자면 “왜 신공항을 짓는 것은 투자고, 기차와 버스를 싸게 이용토록 하는 것은 비용이냐”고 묻고 싶다. 스웨덴과 오스트리아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차로 3시간 이내 거리의 국내 항공편을 없애고 국내선 공항을 폐쇄했다. 지난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농성장에 간 ‘희망버스’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을 들어 “10년 넘게 바닷물이 막힌 마르고 황폐한 땅에도 칠면초가 자라고 흰발농게가 살더라. 아무리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것들, 아무리 짓밟아도 짓밟히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흰발농게는 12년을 버텼다”고 했다. 5월15일은 새만금 신공항 취소소송의 최종 선고일이다. 제발 새만금에 마지막 남은 갯벌인 수라갯벌을 지켜달라.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