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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마지막의 어떤 궁리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사월 마지막의 어떤 궁리

그대, 이 세계를 단박에 표현해보라 한다면? 심호흡하고 한 획부터 그어야 하지 않을까. 짐승의 얼굴을 다 그릴 수 없고, 나무의 뿌리를 다 들출 수 없다. 해와 달은 참으로 착한 거리만큼 저만치 떨어져 있다. 먼저 옆으로 한 일(一)자 하나 그윽하게 긋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 일 없는 듯 그냥 지나갈 리 없는 사월이다. 봄 향기 속의 따끔함. 훈훈한 봄바람 속에 꽃샘추위가 발톱을 숨기고 있다.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4층이 없고 F층이다. 아라비아숫자 4의 발음이 ‘죽을 사’와 같아서 그걸 피하려는 방법이다. 죽음이 그리도 무서운가 보다.

죽음을 빼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죽음이 없는데도 된장국이 맛이 있을까. 저 냉철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란 자신의 ‘있음’에 대해 유일하게 질문하는 존재라고 하면서 시간의 지름길로 가서 본인의 죽음을 미리 목격할 것을 권한다. 죽음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사태를 파악해야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 그제서야 비로소 시간의 보따리를 챙긴 뒤 다시 지금으로 되돌아와 자신만의 고유한 태도로 남은 생을 살 수 있다는 것.

물론 나도 죽는다. 이것으로 만사휴의(萬事休矣), 모든 게 끝일까. 죽음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하나로 뭉뚱그려선 안 된다. 바람도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서정주)으로 구분하듯 죽음도 구별해야 한다. 너의 죽음과 나의 죽음.

이제껏 내가 본 건 모두 너의, 남의, 타인의 죽음이었다. 조금 불경한 말로 구경 같은 죽음뿐이었다. 그래서 아픔과 슬픔이 가능했다. 황망함도 있었다. 이 죽음은 세상이 휘두른 죽음이다. 이에 비해 나의 죽음, 이건 내가 세상을 죽이는 죽음이다. 그러니 이런 죽음은 나에게 죽음일 수가 없다. 언젠가 들이닥칠 나의 분명한 죽음. 그것은 당신들의 세상에서 나를 사라지게 할지언정 나에겐 죽음이 아니지 않겠는가.

아직 살아 있는 그대여. 누가 이 세상을 한번에 그려보라 한다면 어떻게 하려오? 우선 시원하게 횡으로 한 획을 긋겠소, 一. 그리고 그 아래로 저녁을 넣겠소, 夕. 마지막으로 편안히 등지고 돌아앉겠소, 匕. 이렇게 하여 ‘죽을 死’는 완성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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