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된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내란죄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반헌법 세력이자 민주주의 퇴행의 책임자들에 대한 단죄 절차다. 그 출발점은 성공적인 내란죄 수사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처음이다. 그 역사를 신생 조직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써내려갔다.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살아 있는 권력을 체포·구속하고, 수사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부했다. 피의자의 변호인은 줄곧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수사 결과를 검찰이 송부받아 기소한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란죄를 공수처의 수사 대상으로 보는 것이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내란은 하나의 사건이자 한 몸이기 때문이다. 법률적 평가, 즉 죄명만 다를 뿐이다. 하나의 행위가 두 개의 범죄로 평가되는 관계다. 그래서 직권남용과 내란은 공수처법상 ‘직접 관련성’이 인정돼 수사가 가능하다. 직권남용이라는 소(小)로 시작해 내란이라는 대(大)로 넘어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있지만, 공수처법 규정상 문언인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를 대소 관계를 따져 축소할 이유는 없다. 소추할 수 없는 직권남용죄를 수사할 수 있느냐의 논란도 있지만,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은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으므로 강제수사는 안 되더라도 임의수사는 허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직권남용죄와 내란죄 수사는 공수처의 설립과 존재 이유를 여실히 증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 그것도 현직 대통령에게 칼을 들이댄 적은 없었다. 살아 있을 때는 눈치 보다가, 죽어야만 비로소 건드렸다. 내란죄 수사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검찰 특별수사본부, 공수처가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혼선이 있었다. 결국 공수처의 이첩 요구권을 받아들여 공수처가 주도적으로 수사할 수 있었다. 공수처의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찰은 수장이 내란에 깊이 관여해 자유롭지 못했고, 검찰도 간접적으로 연루돼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검찰은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가 검사 출신이고, 비상계엄 해제 직후 비공개 안가 모임에 참석했던 법무부 장관이나 민정수석 모두 검찰 조직에 몸담았던 인사였기에 국민적 신뢰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공수처가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댈 수 있었던 것은 공수처장 임명 방식과 절차가 경찰청장이나 검찰총장과 달랐기 때문이다.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공수처장은 국회의장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꾸려 추천하고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는 방식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이중으로 개입해 다른 수사기관의 장보다 임명권자의 영향력에서 멀어졌다고 볼 수 있다.
대폭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은 모두 공수처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존재하는 제도와 기구를 폐지하려면 도입할 때보다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저 무능하고 편향됐다고만 한다. 영장 집행도 실패하고 피의자도 소환하지 못한 점을 들지만, 공수처 탓이 아니다. 막가파식으로 영장 집행을 거부하는 경호처와 안하무인으로 소환에 불응하는 피의자 문제다. 공수처가 수사력의 한계를 보인 것이 아니라 비상식의 피의자 때문이다. 도입할 때 조직과 인원을 축소해 놓고, 있는 정원도 안 채워주면서 무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란죄 수사에서 보여주었듯이 가성비가 엄청 높은 조직이다. 조직의 연륜도 짧고 인원도 적은데 ‘역사상 처음’이라는 탑을 세웠으니 말이다.
다음 대통령과 국회는 형사사법 체계와 질서에 크나큰 변혁을 일으킨 공수처에 인적·물적 대폭 강화라는 상을 내려야 한다. 반대로 본연의 임무도 수행하지 못하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조직은 축소하고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 이것이 정부 조직 운영의 기본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